2024. 11. 28.
사업을 하면서 가장 하기 싫은 말은 "불경기라 어렵다"이다. 이 말은 평생 자영업을 해오신 아버지가 IMF, 금융위기, 코로나를 거쳐 반복했던 이야기였다. 아버지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이 말이 내게는 마치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렇게 나는 '경기가 도대체 언제 좋았던 걸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7년 간의 직장 생활을 끝내고 이커머스 사업을 시작한 시점은 2020년 말, 코로나가 터지고 난 직후였다. 그 시점은 경제침체에 대한 우려로 인해 오히려 유동성이 풍부하게 시장에 풀렸고, 소비 심리가 강했던 시기였다. 게다가 국내 온라인 유통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던 시기와 맞물려 내 사업은 4년 넘게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5년 차에 접어든 요 몇 달 사이, 매출이 신기할 정도로 정체되기 시작했고, 매일 체크하던 매출 그래프는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나는 이제서야 '불경기'라는 말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불경기를 실감하다
돌이켜 보면, 내가 "불경기라 어렵다"는 말을 믿지 않았던 이유는 불경기를 체감할 만큼 사회의 중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때는 용돈을 타 썼고, 알바를 하면 일한 시간 만큼 예상하는 급여가 나왔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사회 초년생이었던 터라 연봉 2천만 원 초반부터 시작한 내 월급은 7년 간 꾸준히 올랐고,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떠났으며, 새로운 아이폰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곤 했다.
개인 사업을 시작한지 5년 차에 들어서야 '불경기'를 실감하는 이유는 경제사회의 변두리에 머물던 내가 이제는 그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내 사업의 일 평균 매출은 1,365만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10월부터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글을 쓰고 있는 이달 11월 일 평균 매출은 973만 원으로 30% 가까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원인을 찾기 위해 이런 저런 요인들을 분석해봤지만, 전반적으로 '불경기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기쁨을 느꼈다. 불경기를 탄다는 것은 내 사업이 시장의 흐름 속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산을 오르다가 A 산봉우리를 찍고 다음 B 산봉우리로 가기 위해 산 능선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완만하게 걷는 것과 같다.
불경기에 사업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
사업을 시작하기 좋은 때는 언제일까? 많은 사람들이 시장이 좋을 때를 생각하지만, 오히려 불경기에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유리할 때가 많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는 바닥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불경기에는 시장의 파이가 축소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은 애초에 시장 점유율이 미미하기 때문에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떨어질 곳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기회가 된다. 두 번째로는 불경기에 성장의 발판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경기 동안 점진적으로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며 시장에 안착하다 보면, 경기가 풀리는 시점에 시장의 흐름을 타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경쟁업체들이 위축된 틈을 타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가능성도 커진다. 세 번째로는 효율적인 자원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경기에는 사업에 필요한 자원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인력, 자재, 마케팅 비용 등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도식화 한다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불경기에서 찾는 새로운 기회
며칠전 내 블로그를 보고 커피챗을 요청해 온 두 명의 젊은 창업가를 만났다. 그들은 소셜 펀딩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상품을 개발하여 쿠팡 입점을 앞두고 있었다. 대화는 약 1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나는 그들에게 그동안 1인 기업을 운영하며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몇 가지 노하우와 관점을 공유했다. 대화 막바지에 나는 불경기가 사업에 가져다줄 수 있는 장점에 대해 조언했다. 물론, 사업을 시작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내가 사업을 시작했을 때처럼 경기가 좋을 때다. (당시엔 경기가 좋은 지 몰랐지만.) 그러나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대부분의 경우, 불경기라는 상황 속에서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성장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결국 경기는 ‘불경기’이거나 ‘불경기가 아닌’ 두 가지 경우뿐이다. 불경기가 아닐 때는 사업을 확장하기 좋고, 불경기일 때는 사업을 새로 시작하기 좋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기가 아니라, 어떤 전략과 전술을 펼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나또한 불경기를 처음 맞고 1인 기업 운영에 많이 기죽은 상태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지난 커피챗에서 젊은 창업가 2명에게 조언한 내용은 나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야 말로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테스트하며 다음 성장을 모색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