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23.
오래간만에 새로운 프로젝트의 브랜딩을 한다. 이 글은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한 에어비앤비 프로젝트에 대한 브랜딩 과정을 기록하고자 작성했다. 정확한 사업의 명칭은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이고 해당 사업은 나의 명의가 아닌 타인의 명의로 진행하고 운영 또한 타인이 한다. 명확히 하자면 나는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고 브랜딩 및 공간 컨설팅을 한 입장이다. 그러니 사업 컨설팅을 의뢰받은 입장으로 프로젝트를 소개하겠다.
사업장은 6호선 증산역이 도보 3분 거리, 불광천 이면 도로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다. 공항철도가 지나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과 역 하나를 두고 있어서 공항에서의 접근이 용이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성수동과 신사동까지 약 1시간, 홍대와 이태원 광화문 일대까지도 약 30분이 걸려 주요 관광지와 접근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주요 관광지에 인접한 위치였다면 브랜딩에 크게 힘을 주지 않고 ‘안티 럭셔리’를 내세운 무인양품 호텔의 컨셉으로 기본에 충실한 숙박시설이었으면 충분할 터였다. 이는 내가 과거 공덕과 홍대에서 운영했던 도시민박업의 컨셉이었다. 하지만 본 포스팅에서 말하고 있는 공간은 주요 관광지에서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하여 굳이 애써 찾아와야 하는 명분을 제공해야 한다.그러니 이번 프로젝트 브랜딩의 핵심은 사람들을 찾아오게 하는 명분을 제공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브랜딩이란 무엇인가?
브랜딩은 다른 브랜드와는 다른 가치를 세우는 것이고, 브랜드 디자인은 이를 소비자에게 인식시킬 수 있도록 (마케팅 할 수 있도록) 실체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브랜딩은 컨셉이고 브랜드 디자인은 컨셉 도구이다. 우선 브랜딩부터 이야기 해보자.
브랜딩은 다른 브랜드와 다른 고유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브랜드라 함은 내가 의뢰받은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과 경쟁하게 될 브랜드이다. 숙박업이라는 사업행위로 보면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사업장, 모텔, 호텔 등이 있다. 위치로 보자면 좁게는 같은 상권부터 넓게는 서울, 대한민국, 전세계일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숙박업소의 컨셉 하나만 보고 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 경험이 있기에 전 세계로 확장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경쟁 브랜드를 알아야 그와 다른 가치를 내세울 수 있으니, 경쟁 브랜드를 선정하는 것이 브랜딩의 첫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브랜드를 경쟁사로 삼을 것인가. 이를 결정하려면 사업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사업이란 것은 소비자가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금액을 받고 가치를 교환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 즉 얼마의 금액을 받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도시민박업의 경우 1개의 사업장만 운영할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객단가를 높여야만 한다. 클라이언트가 희망하는 월 수익은 400만 원으로 공실률 40%, 한 달 18일 예약으로 계산하면 1박당 23만 원의 수익이 나야 한다. 주요 판매 플랫폼으로 사용할 에어비앤비의 수수료는 호스트, 게스트 합산 약 18%이므로, 1박당 23만 원의 수익이 남으려면, 1박당 소비자가격은 28만 원 이상이 되어야 한다.
경쟁 브랜드 리서치
객실 수가 1개인 스몰 브랜드로서 높은 가격으로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이해 해당하는 시장을 찾아야 하고 해당 시장 포지셔닝 내에서 경쟁 업체를 찾아야 한다. 숙박업 시장을 가격과 객실수 규모로 구분할 수 있겠고 객실수가 적고 가격이 높은 시장 포지셔닝은 스테이폴리오 플랫폼으로 판매되는 소위 ‘스테이’ 브랜드 군이 있다. 이곳은 새로운 숙박 공간 경험을 제공하며 2010년 이후 꾸준히 성장해 온 섹터이다.
해당 포지션 내에서 경쟁 브랜드를 2곳을 찾았다. 지금서울(zikm) 과 탈로서울이다. 지금서울은 1박당 20만 원 대이고 공실률은 대략 20% 정도로 성황리에 영업 중이다. (현재 영업은 종료하였고 탈로홈이라는 이름으로 생활용품 및 제주도 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 탈로서울의 업장은 한국에서 만나는 핀란드를 컨셉으로 1박당 30~40만 원 대임에도 공실률이 거의 0일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신규 프로젝트 브랜딩 과정에서 이들을 가상의 경쟁 브랜드로 설정하고 컨셉을 도출하기로 했다.
지금서울의 경우 한옥 그 자체가 컨셉이다. 평소에 경험하기 힘든 한옥 공간에서 숙박하여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매력 포인트이고 그 컨셉에 아주 걸맞게 한양도성을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가 가깝다. 한편 탈로서울은 압구정동에 위치했으며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 알토의 가구들로 가득 채운 공간을 따뜻한 목재 마감재로 마감한 것이 특징이었다. 알바 알토가 아닌 핀란드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알바 알토의 가구와 조명을 실물로 경험한다는 것이 포인트였다. (우연히도 지금서울 역시 알바 알토의 가구로 꾸며졌다.)
클라이언트의 사업장은 이 두 경쟁 브랜드와 다른 가치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또는 그런 관점으로 브랜딩에 접근한다.) 우선 브랜딩 전에 이미 결정된 위치를 보자면 경쟁 브랜드보다 매력이 떨어진다. 탈로서울은 압구정동이라는 문화관광의 중심지에 위치했었고 지금서울 역시 동대문역 성곽공원에 인접해 비교적 문화관광의 중심지이다. 한편 클라이언트의 사업장 위치는 증산역과 가깝지만 관광지로서 인기 있는 지역은 아니다. 불광천을 끼고 있다는 점과 공항철도 디지털미디어시티와 한 정거장이라는 점은 좋지만 브랜딩 관점에서 매력은 없다.
브랜드 컨셉 도출
브랜드 그 자체의 매력으로 어필을 해야 하므로 탈로서울이나 지금서울의 컨셉보다 한 단계 더 깊이 있고 차별화된 브랜딩이 필요하다. 두 경쟁 브랜드의 컨셉은 하드웨어에 치중되어 있다. 지금서울은 한옥이라는 하드웨어에 탈로서울은 알바알토의 가구와 조명이라는 하드웨어에 말이다. 그러기에 필자는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까지 확장할 수 있는 브랜드 컨셉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안고 컨셉 브래인스토밍을 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하나의 브랜드 컨셉. 하드웨어와 소프트에어를 아우르는 하나의 브랜드 컨셉. 이 한 문장을 되내며 며칠을 고민했다.
컨셉 브레인스토밍과정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발표됐다.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다. 그래 무라카미 하루키만큼 소프트웨어적인 취향을 대중에게 공유하고 있는 캐릭터도 없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 많은 에세이를 통해 문학, 음악, 러닝, 위스키, 야구, 고양이 등에 대한 애정을 수십 년간 대중에게 알려온 취향 전도사다. 하지만 이를 컨셉으로 가져가기에 하드웨어적인 문제가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카가 좋아하는 가구에 대한 정보, 즉 하드웨어를 확장할 수 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구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집’을 검색하게 되었고 그 단서가 될 만한 콘텐츠를 발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업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와 그 사진이 있었던 것이다. 해당 콘텐츠는 일본의 한 잡지사에서 취재한 콘텐츠로 주제는 ‘음악’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만 장 이상의 LP를 수집할 정도의 음악 광으로 알려져 있고 취재 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 취향과 리스팅 세팅을 소개하였다. 스피커, 리시버, 턴테이블 모두 하드웨어적 요소이다. 하지만 그가 소장한 스피커와 리시버 턴테이블은 중고 거래가 거의 없는 과거의 모델이었고 구할 수 있다고 해도 금액대가 수천 만원을 넘었다.
그래서 그가 사용하는 가구로 눈을 돌렸다. 그가 음악을 들을 때 앉은 의자 말이다. 그 의자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찾는 것이 조금 수고스러웠다.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취합하고 가구의 디테일을 살펴보고 그와 흡사한 디자인을 추정하며 리서치를 계속해 나갔다. 결과적으로 그 의자는 한스웨그너의 AP16 라운지 체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AP16 라운지 체어는 빈티지 중고로 약 750만 원이었고 (물론 비싸지만 음향기기에 비하면 투자할 만한 금액대다) 국내엔 판매하는 곳이 없고, 유일하게 동일한 검은색 가죽으로 마감된 것을 일본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이를 발견하고 이것으로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집
그리하여 컨셉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집’이다. 하드웨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청음실에서 사용하는 한스웨그너 AP16 라운지를 기점으로 하여 ‘덴마크’, ‘미드센츄리’, ‘오리지널’이라는 컨셉 키워드로 확장해 나가며 기획한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컨셉과 연결하여 무라카미 하루키가 영감을 받은 ‘미드센츄리’ 문학작품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의도적으로 뺀다) 과 재즈로 채운다. 이 외에도 고양이, 달리기, 위스키 등 무라카미 하루키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뺄 것인가만 명확한 컨셉 기준 아래 결정하면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콘텐츠로 채운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을 위한 2인칭 시점의 공간이 아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선으로 채운 1인칭 시점의 공간을 기획하여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은 흡사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어보는 기이한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력이 된다면 다음 편에선 브랜드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그다음엔 공간디자인 콘텐츠도 하나 더 올릴까 한다. (이 역시 여력이 된다면) 지난 도쿄- 파리- 런던 여행을 마치고 못 올린 글이 많은데, 언제나 그랬듯 써야할 콘텐츠는 늘고 몸은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