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8.
김금희의 단편 소설을 좋아한다. 작가를 알게된 단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
단편집 속 서울을 살아가는 20~30대 주인공들. 그들은 내가 걸었던 거리를 걷고, 내가 탔던 지하철을 타고, 내가 갔던 음식점에서 내가 먹은 음식을 먹는다. 내가 만나고 헤어진 사람을 그들도 만나고 헤어진다. 내가 했던 생각을 하고 느꼈던 감정을 느낀다. 짧은 소설은 좀처럼 이야기를 말끔하게 맺지 못하고. 마치 내일을 위해 하루를 정리하듯 이야기를 툭 닫는다. 그 끝에는 멍하게 지난 추억에 잠겨 하루를 정리하는 내가 있다.
김금희 짧은 소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작가는 얼마 전 장편 소설 〈경애의 마음〉을 발표했는데 나는 책의 2/3 쯤을 읽을 때 멈췄다. 내가 소설의 어디에 어느 부분을 읽고 있는지. 길을 잃어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할 것 같은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서 그만 읽었다. 두꺼운 이야기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김금희 작가가 새 단편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를 냈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단편 소설이라기에 민망한, 10~20 페이지에 쓰인 짧은 소설들. 짧아서 더욱 좋은 김금희의 소설들이 늦가을 거리에 은행 떨어지듯 우수수 쏟아진다. 소설집에 쓰인 19명의 주인공은 이번에도 역시 내가 갔던 곳을 가고 했던 생각을 한다. 5번째 수록된 《파리 살롱》은 전 직장에 다닐 때 르풀에서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으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올리브 잡지 실렸었다.
김금희 짧은 소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파리 살롱》
난방이 안 되는 레스토랑에서 벌벌 떨며 경을 기다리던 윤. 종일 해가 들지 않아 한여름 한낮에도 추웠던 르풀에서 차가운 샐러드를 먹으며 《파리 살롱》을 읽던 나. 추위가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라 위로를 받은 윤과 그런 윤의 생각에 위로를 받은 나. 김금희는 작가의 말에 “무언가를 잃어버렸음을 아프게 인정할 때야 무언가를 쓸 용기가 생긴다”고 썼다. 나는 소설의 어떤 부분에서 감명을 받았을 때 블로그에 독후감을 쓸 ‘영감’이 떠오른다고 생각했었으나.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무언가를 잃어버렸음을 인정했기에 ‘영감’이 떠오른 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소설을 읽으며 과거에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한다.
파리 살롱을 다시 찾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어딘가에서 불현듯 추위를 느끼고 혼자임이 실감된다면 어디든 가장 가까운 곳에 들어가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따뜻한 것, 아주 따뜻한 것을 먹겠다고.
수프를 다 먹은 윤이 식당을 나서는데 청년이 미안한 듯 쭈뼛대며 알고 보니 히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그래서 추웠던 것 같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윤은 자기가 느끼고 있던 추위, 차가움이 착각이 아니라 실제였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