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 충격적이고 기괴하고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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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속을 울리는 이명, 지끈거리는 두통,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누군가 좇아오는 듯한 피해망상… 가끔 그런 증상에 시달릴 때면, 나는 식물이 되고 싶다. 주어진 땅에 홀연히 서서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아름드리나무처럼, 아무 생각과 의지를 갖지 않고, 물과 햇살만 먹고 받으며,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씩 늙는, 맑은 상태를 꿈꾼다.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속 인물, 영혜는 정말 하루씩 식물에 가까워지는 삶을 산다. 처음부터 식물이 되려 한 것은 아니다. 시작은 채식주의였다. 육식에 관한 악몽을 꾼 뒤로 고기를 먹지 않았다. 끔찍한 악몽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어릴 적 트라우마를 끄집어낸다. 동시에 그녀의 채식 기준도 엄격해진다.


조용하고 순종적이기만 하던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며 의지를 드러낸다. 그런 부인의 변화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위협한다고 느끼는 남편. 채식으로 점점 야위는 딸이 가정을 잘 지켜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부모. 먹이를 앞에 둔 들개의 송곳니처럼, 남편과 부모는 가부장적 면모를 드러내며 영혜에게 고기를 먹이려 달려든다. 아버지는 영혜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고기를 쑤셔 넣는다.


하지만 그녀는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과도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 육식을 거부한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영혜는 햇살에 가슴을 드러낸 채 새의 상처를 핥는 기이한 행동을 한다. 더이상 영혜를 이해할 수 없는 남편과 부모는 결국 그녀를 버린다. 내게 그 행동은 자신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와 트라우마를 벗어나 자연 상태로 회귀하려 했던 영혜의 노력이 아닐까 싶지만, 어디까지나 내 이해일 뿐, 영혜는 명백히 미쳤다.



《채식주의자》는 표제작 단편인 〈채식주의자〉 뒤로, 〈몽고반점〉과 〈나무 불꽃〉으로 이어지는 삼부작으로 쓰였다. 〈채식주의자〉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몽고반점〉은 또다시 폭주한다. 〈채식주의자〉가 충격적이라면, 후작은 기괴하고 역겹다.


영상 예술가인 영혜의 형부는, 영혜의 엉덩이에 작은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알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는 영혜와 자신의 몸에 꽃을 그려 넣고 몸을 뒤섞는 영상을 촬영하고 예술적 성취를 맛본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그의 이야기는 결국 부인에게 발각되어 파멸한다.


마지막 단편 〈나무 불꽃〉은 폭주하는 소설을 진정시키듯, 영혜의 언니의 차분한 시점으로 흐른다. 끓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애써 담담하게 읊조리는 듯한 서정적인 문체. 무너진 가정 속에서 아들과 가게를 돌보는 피곤한 가장의 삶. 자신이 정신병원에 가둔 동생, 영혜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처절한 그녀의 도덕심이 애처롭다.


그녀는 먹기를 거부하고 식물이 되려는 영혜를 찾아가 마지막으로 설득하려 노력하지만, 오히려 식물이 되려는 영혜를 힘없이 이해하게 된다. “왜 죽으면 안 돼?” 라고 되묻는 미친 동생과, 미친 남편이 남기고 간 아들을 돌봐야만 했기에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처참한 생각에 이르자, 영혜에게 더이상 삶을 강요할 수 없게 된다.



책장을 덮고 이토록 영혜의 언니에게 마음이 쓰이는 것은 왜일까? 끝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동물. 어떠한 욕망도 갖지 않는 식물. 둘 중 무엇도 될 수도 없는 인간의 딜레마, 그게 아니면 세상을 둘로만 나누어 이해하는 이원론적 강박에 사로잡힌 인간의 허무함을 그림자 없이 드러낸 인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서두에 밝힌 대로 나는 가끔 식물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반대로 동물이 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 무엇도 되려 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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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담긴 의견

    • 이거 맨부커상을 받은 그 소설이로군요
      아직 일어 보진 못했는데 호기심이 생깁니다

    • 안녕하세요 공수래공수거님, 저도 큰 상을 받은 작품이라 애초에 읽으려 했지만, 당시에 출간된 작가의 <흰>을 읽고 난해한 감상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작품이에요. <흰> 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어줍잖은 리뷰를 떠올리느라 고생했습니다 ^^

    • 서명은 들어봤는데 설명보니.. 꽤나 흥미가는 내용이네요.
      채식주의를 시작하면서.. 뭔가 식물이 되어가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니..
      나중에 시간나면 꼭 읽어봐야겠네요. 삼부작이니 몽고반점까지...

    • 한국 작가 최초로 국제적인 문학상을 받아서 크게 이슈가 되었던 작품이라 아마 한번쯤 들어보셨지 않을까 싶어요. 돌아 보니, 채식주의자라기보다는 육식거부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 식물과 같이 물과 햇살만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낸 작품이에요. 어려운 작품이라 한 문장으로 감상을 전달하기 복잡한 감정이지만, 확실히 마음에 덩어리가 남는 작품입니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순간에 제 빛을 발할 듯한 그런 덩어리요 ㅎㅎ 기회되면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 이 작품이랑 소년이 온다 읽고 싶은데 아직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많아서...
      읽게 될 날이 기다려지네요!

    • 큰 상을 받아서 많은 독자가 읽은 만큼, 읽어 두면 사회적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추천합니다 :)

    • <몽고반점>부터 읽고 <채식주의자>를 접하게 되었는데요.
      몽고반점은 정말 읽기 괴로운 소설류였어요. 예술이라는 명목하에 행해지는 비인륜적인 사건, 그속에서
      미쳐가는 사람들 같아서 힘들었습니다.ㅎㅎ 저의 식견이 예술의 경지에 오르지 못해서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 안녕하세요 luvholic 님 :) 저도 공감합니다. 읽는 동안 역겨워서 힘들었어요. <몽고반점>을 제외하고 채식주의자와 나무 불꽃 두 작품으로 소설을 완성하거나, 몽고반점의 예술성이 좀 더 숭고하고 초월적인 매력을 가진 작품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래서 독자가 형부를 어느정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

    • 안녕명보야
      나는 그 책을 읽고 그냥 막무가내로 불쾌했는데, 넌 참 잘 분석했구나.
      난 왜 그런류의 책(이나 영화)을 읽으면 그냥 역겹고 불쾌할까.
      시각이 굳어버린걸까

    • ㅎㅈ 누나죠?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저도 역겹고 불쾌했어요. 큰 상 받지 않았다면 못봤을 것 같아요. 하지만 3부작의 마지막 단편만은 다시 한문장 씩 곱씹어 보고 싶을 만큼 좋았어요 ㅎㅎ
      머리가 굳으면 어떤가요.. 좋고 행복한 것만 보고 느끼기에도 부족한데 ㅎㅎ 싫은건 열심히 피하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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