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15.
정림건축문화재단 건축학교 토요일 11시에 다녀왔다. ‘건축학교 토요일 11시’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뉘어 기획되며, 한 회마다 4주간 총 4명의 건축가의 강연이 열린다. 건축 문화에 관심이 많은 성인을 대상으로 강연당 100분 정도 진행된다.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강연이 열린 예술가의 집
2018년 상반기 주제는 공유공간이다. 내가 다녀온 강의는 2주 차 민성진 건축가의 강연으로 약 2년 전 부산 기장에 문을 연 힐튼 호텔 & 아난티 코브의 공유 공간, 그중에서도 ‘이터널 저니’ 라이브러리를 중심으로 그간의 작업 전반을 소개했다. 평소 건축 디자인, 호텔 비즈니스, 라이브러리에 관심이 많던 내게 최적의 강연이었던 셈. 기대만큼 좋은 강연이었고 블로그를 통해 느낀 점을 정리한다.
예술가의 집은 옛 서울대학교 본관
건축학교 토요일 11시 OPEN
진행을 맡은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사무국장은 강연에 앞서, 한국 대중이 일상에서 건축의 다양함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며 건축학교 토요일 11시 강연을 통해 도시와 공간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강연에는 건축 전공자나 학생뿐만 아니라 건축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도 상당수 있었다.
민성진 건축가 강연|휴식과 쉼, 감정을 증폭시키는 힘
민성진 건축가 강연|강연을 들으면 커피를 무료로 준다
민성진 건축가 강연|민성진 건축가(좌)와 박성태 사무국장(우)
민성진 건축가 SKM 건축사무소
부산에서 태어난 민성진 건축가는 중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하며, 남부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건축학 학사,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에서 도시디자인학 석사를 취득하고, 1995년 SKM 건축사무소를 설립한 엘리트 건축가다.
건축사무소를 설립한 지난 23년 동안 25개의 프로젝트를 했으니 많은 작품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표작품들: 아난티 클럽 서울, 힐튼 남해 골프 & 스파 리조트, 파주 헤르만하우스, 금강산 아난티 리조트 등을 살펴보면 대규모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주로 설계했다.
특히 멤버쉽으로 운영하는 아난티 클럽 하우스를 가진 에머슨 퍼시픽과 지난 20여년 간 꾸준히 작업해 왔다. 이번 강연에 소개한 3개의 프로젝트: 금강산 아난티 리조트, 서울 아난티 클럽 하우스, 부산 아난티 코브 역시 모두 아난티와의 작업이었다.
민성진 건축가 강연|휴식과 쉼, 감정을 증폭시키는 힘
민성진 건축가 강연|금강산 아난티 리조트 부지
민성진 건축가 강연|금강산 아난티 리조트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민성진 건축가는 미국 서부에서 공부하던 중학생 시절, 유명 건축가가 건축한 공공 도서관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을 회상했다. 그 건축적 체험이 그를 건축가의 꿈을 꾸게 했다고 한다. 프라이빗한 공간을 주로 설계한 그가 최근 공공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강연 내내 강조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는 서울의 지하철역과 한강공원 등 많은 대중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공간에 대한 작업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그동안 공공 공간 작업을 많이 하지 않았다고 해서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소홀한 것은 아니었다. 강연을 열며 소개한 금강산 아난티 리조트(2008) 작업 당시에 대규모 금강산 부지 중 원하는 땅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금강산의 자연과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금강산 안이 아닌, 금강산이 내다 보이는 곳을 선택했다. 또한, 추후에 리조트가 철거되더라도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목재를 최대한 활용했다고 한다.
민성진 건축가 강연|부산 힐튼 아난티 코브 모형
민성진 건축가 강연|힐튼 아난티 코브 객실 모형
민성진 건축가 강연|힐튼 아난티 코브 전경
아난티 코브 공공 공간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아난티 브랜드와 신뢰적인 관계를 구축한 그는 부산 아난티 코브를 설계할 당시 많은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을 강조했다고 한다. 부산 기장에 위치한 아난티 코브는 바다와 산 사이에 위치하는데, 콘도 시설을 최대한 산 쪽으로 밀어 해변을 공원으로 설계한 것이다. 콘도를 바다에서 산으로 기울어진 계단식으로 설계한 것 역시, 자연 한가운데 있는 큰 건축물의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공원에 맞닿은 건물을 2층 높이의 아난티 빌리지를 설계해, 고급 호텔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음식점과 샵을 둔 것도 눈에 띄었다.
아난티 코브와 맞닿아 있는, 힐튼 호텔에는 호텔 투숙객뿐만 아니라 누구나 들러 책을 보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600평 규모의 라이브러리가 있으며, 로비 공간 역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호텔 투숙객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상층부에 투숙객 전용 로비를 따로 두었다고 한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프라이빗 공간과 퍼블릭 공간이 위화감 없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했다고 하지만, 예상보다 너무 많은 대중이 찾아 주차 시설이 부족하고, 해변 광장 운영 시간 등 일부 프로그램을 수정해야 했다며, 너무 많은 관심이 반가운 한편으로 당황한 모습도 보였다.
민성진 건축가 강연|힐튼 아난티 코브 전경
민성진 건축가 강연|힐튼 아난티 코브 차량 진입로
민성진 건축가 강연|힐튼 아난티 코브 수영장, 해수욕을 즐길 수 없는 바닷가라 수영장을 크게 설계했다고 한다
이터널 저니, 책의 존엄성
강연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건축가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민성진이었다. 그는 아난티 코브를 소개하며, 시대와 사회가 바뀜에 따라 건축 역시 바뀌어야 함을 강조했다. 매일 셀 수 없이 많은 대중이 찾을 뿐만 아니라 1,000여 명이 직원이 일하는 공간인 만큼, ‘일하고 싶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직원의 편의와 복지에도 신경을 썼다. 눈에 띄는 부분은 호텔 차량 진입로로, 야외에서 차량 안내를 돕는 직원들이 추운 날씨에도 따뜻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터널 저니의 모든 책은 표지가 보이도록 진열되었다. 최대한 적은 책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기 위함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한 의도는 ‘책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고. 모든 인간이 인간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존엄성을 가지고 있듯이 책을 존중하기 위한 의도였다. 작은 책 진열 하나에도 그러한 인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그는, 자연의 존엄성, 건축의 존엄성을 세심하게 고민한다고 느꼈다.
민성진 건축가 강연|힐튼 호텔 이터널 저니
민성진 건축가 강연|힐튼 호텔 이터널 저니
민성진의 오리지널리티
그의 건축적 오리지널리티는 어디에서 나오나 궁금했다. 이 질문에 그는 장식을 덜어낸 모더니즘 건축 사조인 “Form follows function.”을 말하며, 공간의 프로그램을 위한 효율적인 설계를 바탕에 두고 대략적인 형태가 나오면 그 건물이 지닌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고 답했다. 박성태 사무국장은 민성진 건축가가 어느 건축사무소보다 많은 모형 작업을 한다고 덧붙였으며, 실제 강연에서도 많은 모형 작업을 소개하기도 했다. 건축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형태의 고민 끝에 공간이 드러내고자 하는 존엄성 혹은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대학로 분식 포장마차
대학로는 왠지 떡볶이
일상에서 사람들이 휴식하고 쉴 수 있는 공공 공간 설계에 욕심을 내비치며 강연을 마친 만큼, 앞으로 그의 건축을 직접 경험할 날이 많아지지 않을까. 사실 나는 야망이 큰 건축가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되려 일상의 풍경을 불편하게 하는 경향이 있기에. 그렇기에 민성진 건축가의 작업이 더욱 기대된다.
그리고 대학로에 왔으니 대학생이 된 기분으로 떡볶이를 먹었다!
왠지 청춘이 되는 것 같은 마법 같은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