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13.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이토록 달콤한 고통>을 읽었다.
사랑과 집착을 누가 가려낼 수 있을까. 떠나간 연인을 못 잊고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데이비드의 사랑은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한쪽으로 확실히 치우쳐 집착임이 드러난다. 하지만 사랑에서 집착에 이르는 그러데이션이 너무나도 옅어서 어디서부터가 집착인지 좀처럼 짚을 수 없다.
20세기 말을 풍미한 천재적인 작가의 작품이라 하기에는 중반부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으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성능 좋은 디젤차의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은 것처럼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끝을 향해 치닫는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에는 아주 단단한 벽을 앞에 두고도 한치의 지체도 없이 그대로 부딪혀 파멸해 버린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이토록 달콤한 고통>
마지막 문장이 지닌 힘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소설을 다 읽은 늦은 밤, 머리와 가슴을 가득 메운 어지러운 감정을 어쩌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며 방안을 오갔다. 데이비드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완벽한 자아인 뉴마이스터와 나와 그가 하나의 육체 안에 억지로 쑤셔 들어간 듯 호흡이 가빠지고, 내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 같은 오싹한 경험이었다. 이틀이 지난 지금도 좀처럼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데이비드의 광기 어린 집착은 틀림없이 잘못이고 악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어 사랑을 이루고자 한 그를 연민하고 존경하게 된다. 에나벨이 데이비드의 사랑을 받아주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의 집착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랑으로 기억됐을까.
LA타임스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첫 소설인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두고 “도덕적 현기증을 불러 일으킨다”라고 평했다. 그가 또다시 불러 일으킨 이 도덕적 현기증은 독후감을 무어라 맺을 지 못할 만큼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이토록 달콤한 고통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말고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