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비전 총괄 디렉터 사다오 쓰치야 강연 / HOUSE VISION 2016 TOKYO

by 보심 · 2015. 12. 6.

이번 주말에는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제가 다섯 살 때부터 살았던 아파트에 아버지가 아직까지 살고 있습니다. 한창 대학에서 인테리어를 공부할 때 촌스럽게만 느껴지던 고향 집 인테리어-예컨대, 꽃무늬 벽지와 누런 장판, 짙은 고동색의 몰딩과 걸레받이, 방문에 달린 회오리 장식이 들어간 둥근 손잡이와 끝 부분만 은색으로 강조된 까만 휴지걸이-가 요즘엔 왠지 고풍스럽게 느껴집니다.


몇몇 가전제품을 제외하고는 지난 20여 년 동안 집에 달라진 점이 없을 정도로 아버지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없습니다. 눈에 띄게 바뀐 점이 있다면, 거실과 부엌을 나누는 목조 미닫이문을 떼어낸 것입니다.


집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거실과 부엌 사이에 벽이 사라진 것은 비단 저희 집만은 아닐 겁니다. 집은 사람들의 사고와 생활 방식에 따라 바뀝니다. 앞으로의 10년은 어떻게 집이 바뀔까요? 이러한 질문은 단순히 예측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집을 제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널리 권장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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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자인페스티벌 세미나 / 사다오 쓰치야


지난 목요일 한때 무지 하우스 디렉터이자, 현재 하우스비전(HOUSE VISION) 총괄 책임자인 사다오 쓰치야(Sadao Tsuchiya)가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세미나에 참석해 강연을 열었습니다. 사다오 쓰치야의 강연 주제는 ‘10년 후 아시아 주거문화’였고 주로 하우스비전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1시간 30분가량 들려주었습니다. 아래는 강연 일부를 요약한 것입니다.

 

일본의 집은 일본의 토양에서 자랄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나무를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땅을 가꿀 필요가 있습니다. 전람회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토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시아의 근대화라는 것은 서구의 근대화를 모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하우스비전)는 서구의 근대화 속에서 과연 일본인이 행복할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일본 사람의 관점에서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한국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다릅니다. 그렇듯이 중국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또한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면, 지금부터는 각각의 나라가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3년 동안 하우스비전 활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그로 인해 저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일본과 다른 나라들이 얼마만큼 다른가에 대해 많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우스비전은 아시아 7개국에서 열리고 있는데, 한국도 포함해서 8개가 되어 각국의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봤을 때 ‘같은 건축이 아니어도 된다.’라는 다름에 대해 찾아나가는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 세계의 경제를 이끌며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에서, 한국인이 생각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풍요로움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실현해 나갔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5. 12. 3.

사다오 쓰치야


지난 2013년 열린 하우스비전 전시에 대해, 하라 켄야가 큐레이팅하였다는 것과 참여했던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하우스비전의 기획 의도라던가 메시지가 무엇인지까지 깊이 알진 못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하우스비전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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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하우스비전 전시를 소개하고 있는 사다오 쓰치야


하우스비전은 건축가와 기업을 주축으로 ‘앞으로의 집’에 대해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함께 고민하는 자리입니다. 지난 하우스비전을 기준으로 보면 2011년과 2012년 심포지엄을 통해 60여 개의 아이디어가 제안되었고 그중 7개의 아이디어가 2013년 전시에서 파빌리온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전시된 각각의 아이디어는 건축가와 기업가가 협업해 제안된 것입니다.



무지와 시게루 반이 협업한 '가구의 집'


흥미로웠던 파빌리온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무지와 건축가 시게루 반이 제안한 ‘가구의 집’은 벽이 없이 가구로만 지어진 집으로, 가구로 레이아웃을 잡고 그 위에 지붕만 얹으면 집이 된다는 기발한 주거형태입니다. 모든 제품을 자사의 모듈에 맞추어 생산하는 것 답게 모듈을 확장하면 자연스레 집이 되는 형태입니다. 사다오 쓰치야의 말을 빌리자면 “숟가락부터 집까지 모든 것이 정확”한 주거환경입니다.



츠타야서점 CCC와 Real Tokyo Estate가 제안한 '편집된 집'


또 하나 소개하자면, 츠타야서점 CCC리얼도쿄이스테이트(Real Tokyo Estate)가 제안한 ‘편집된 집(The Edited House)’입니다. 이 집은 책과 음악을 편집하는 것처럼 라이프스타일을 편집한다는 콘셉트로 기획되었으며 벽을 허물고 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편집하며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특징입니다. <마음을 연결하는 집> 책을 통해 국내에도 프로젝트가 잘 알려진 야마모토 리켄과 Local Community Area Principles가 제안한 공유 커뮤니티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공유 주거를 실제적이고 심도 있게 풀어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책을 통해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지난 2013년 전시가 끝난 후 다양한 국가에서 하우스비전을 열고 싶다는 문의가 많았고, 지금까지 일본을 포함하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중국, 대만의 아시아 7개국이 하우스비전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다오 쓰치야는 한국에서 하우스비전 활동이 전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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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하우스비전 전시를 소개하고 있는 사다오 쓰치야


오는 2016년 여름, ‘CO-DIVIDUAL’-공동체 생활을 하면서도 유동적으로 생활하고 싶은 마음을 뜻하는 조합어-을 주제로 두 번째 하우스비전 전시가 열리고 이 전시에 대한 심포지엄은 이미 끝난 상태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지난번 전시보다 더 커진 규모로 총 12개의 파빌리온이 소개될 예정이라고 하며, 앞으로 3년을 주기로 꾸준히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강연 마지막에는 Q&A시간을 가졌는데요, 국내 모 건설회사에 다니는 직원의 질문과 사다오 쓰치야의 대답이 흥미로워 소개합니다. 질문자는 서구로부터 유입된 후 지난 30년 간 형성되어온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새롭게 변형해 제안하는데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 벽을 느낀다고 토로하며 일본의 선례를 통해 배울 것이 있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다오 쓰치야는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게 되면 스폰서가 되어 달라"고 말했고 여기에 "첫 단계는 저와 같이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니 건설사 직원은 다양한 사회구성원과 머리를 맡대고 함께 생각하는 지혜를 하우스비전을 통해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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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연에서 2016 하우스비전에 전시될 파빌리온의 콘셉트를 미리 볼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정말 많았는데, 앞으로 포스팅할 하우스비전 관련 글을 빌려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년 행사는 도쿄로 떠나 직접 경험하고 싶습니다. 만약 행사에 가는 분이 있다면, 도쿄에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 첼시♬2015.12.06 11:50 신고

    이 글을 읽고 나니까 한국도 한국만의 하우스비전 활동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의 우리나라의 주거 공간은.. 뭐랄까 국적불명의 요소가 혼재되어 있으면서 단기적인 유행만을 좇는 것 같거든요.
    가구의 방에 흥미가 생기는데.. 모든 벽이 기능적인 요소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런데 가구를 재배치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죠? ㅋㅋ

    • 보심2015.12.07 17:44 신고

      자연스레 집의 모양도 바뀌지 않을까요? ㅎㅎ 그렇게 생각하니 흥미롭네요. 모든 건 시간이 필요하고, 특히 집은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럴수록 사회적 합의점을 찾고 지혜를 모아야겠죠.
      한국에서는 이러한 장기적인 안목으로 주거문화를 논의하기 앞서 과거와 현재를 올바르게 직시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최근의 집관련 책과 전시를 보면요. 나무를 키우기 전에 토양을 가꾸어야 한다는 말처럼, 토양을 다지는 시기랄까요?
      일본은 기업중심으로 주거문화에 대한 논의가 있는 반면, 한국은 공공기관 중심으로 논의되는 추세인데- 성급하기보단 한국만의 리듬을 잘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할 것같습니다.
      아무튼 하우스비전에서 배울 점이 참 많다고 느꼈습니다. 적당한 때에 한국에서도 하우스비전이 열린다면 좋겠습니다.

  • Zosmo2016.01.05 00:23

    하우스비전을 검색하다가 들른 1인입니다. 강연에는 못가봤는데 덕분에 좋은 정보 얻어갑니다. 13년도에 시게루반 사무실과 프로젝트 인연으로 하우스비전 시공현장 및 본 전시를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담당실무자 얘기로는 컨셉은 좋았지만 건축가의 기존 설계언어를 답습한다거나 시간이 없어서 생각만큼 깊이있는 결과물은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번 16년도 전시회는 보다 포커스를 집중한 느낌이라 기대가 되네요.

    • 보심2016.01.05 19:54 신고

      아마 첫 행사인 만큼 그런 부분이 아쉬웠을 수 있겠네요. 좋은 이야기 감사드려요. 다음 행사에는 좀 더 깊숙히, 그런 부분까지 생각하고 드려다 본다면 더 값진 경험이 될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