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19.
지난 일요일 새벽 동이 틀 때 쯤 아주 늦게 잠이 들었는데, 아침 햇살이 상쾌해서 일찍 눈을 떴다. 다시 잠들려 했지만 정신이 맑아서 씻고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요 몇 주 동안 커피다운 커피를 못 먹어서 크레마가 풍부한 걸쭉한 커피가 그리웠다. 검색해보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프릳츠 커피가 있었고, 프릳츠 커피 카페에는 갓구운 빵도 있어서 브런치를 해결하기 좋아 보였다. 에코백에 책 한 권 넣고 곧장 그리로 향했다.
프릳츠 커피 공덕점은 마당을 낀 양옥집을 개조한 독특한 외관이었다. 꽤 이른 시간이라 여유로울 거라 예상했는데, 벌써 야외 테라스가 사람들로 붐볐다. 현관을 지나 한 걸음 내디딘 프릳츠 커피 내부는 한산한 동네 골목길과 분위기가 180도 달랐다. 큰 음악 소리와 직원의 생동감 있는 움직임이 발산하는 에너지가 활기찼다.
외부 입간판에는 '빵 나오는 시간'이 적혀 있었다. "11시 크루아상" 11시가 되기 5분 전이었다. 따뜻한 라떼 한 잔과 크루아상 한 개를 주문하고 2층에 창가 2인 석에 자리를 잡았다. 신선한 빵과 라떼를 먹으니 한 주 동안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것 같았다. 서울을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대외적으로 말할 땐 직장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솔직한 심정은 맛있는 커피와 빵이 있기 때문이다.
나카자와 히나코 소설 [아버지와 이토 씨]
에코백에 챙겨 온 소설은 [아버지와 이토 씨]였다. 일주일 전 채널예스에 공개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의 소개 글을 통해 [아버지와 이토 씨] 영화와 원작소설을 알게 되었다. 20살 많은 연상과 동거 중인 집에 다짜고짜 아버지가 찾아와 살게 된다는 흥미로운 소재의 이야기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조명한 게 마음에 들었고 위트로 가득하다는 내용이 궁금했다. 당시에는 소설 출간 전이라서 영화를 먼저 보았다.
영화 [아버지와 이토 씨]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조연으로 등장했던 릴리 프랭키가 아야의 20대 연상의 남자친구인 이토 씨의 역할을 맡았다. 릴리 프랭키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아는 입장이지만, 조연 연기만 봐왔던 나로서는 저 사람 주연도 가능할까, 라며 마음 졸이며 봤다. 하지만 아주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런 걱정조차 순식간에 잊어버릴 정도 그는 노련하고 뛰어난 연기를 보여 주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좋은 데다가 이야기까지 탄탄했으니 손꼽을 만큼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며칠 뒤 나카자와 히나코 소설 [아버지와 이토 씨]가 출간되어 당일 알라딘 배송으로 받았다. 표지는 영화에 등장한 아버지와 이토 씨가 그림으로 익살스럽게 표현되었다. 엄숙한 표정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토 씨. 영화에 표현됐던 캐릭터 그대로다. 책을 두손에 들고 표지를 보니 소소하게 웃겼던 장면이 뭉클하게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조용한 곳에 틀어박혀서 빨리 읽고 싶었다.
나카자와 히나코 소설 [아버지와 이토 씨]
창가 옆 자리에 자리를 잡고 마침내 책을 펼쳤다.
여름을 싫어하는 34세 서점 비정규직 아야는 학교 급식 파트 타이머로 일하는 20살 연상 이토 씨와 동거 중이다. 이런 아야에게 최악의 여름이 아버지와 함께 찾아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오빠가 모시던 아버지가 상의도 없이 찾아와, 이토 씨와 동거 중인 집에 함께 살게 된 것. 평생을 교직에 몸담다 퇴직한 아야의 아버지는 엄격하고 매사에 불만인 성격이라 주변 사람들이 줄곧 피하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며칠만 있다가 오빠 집으로 돌아갈 거란 생각에 불편한 동거를 참았지만 점점 머무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불안정한 비정규직인 데다가 자신과 20살 연상인 이토 씨와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아버지가 서로 불편할 거라고 아야는 걱정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토 씨의 능글맞은 대응에 기대 그동안 도망치려고만 했던 아버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어디로 외출하는지 모를 아버지의 의심스러운 행방과 아버지가 오빠네 집에서 더이상 지낼 수 없게 된 충격적인 사건을 알게 될 때, 아버지는 소중하게 여기는 의문의 상자를 들고 불현듯 가출한다.
소설을 읽다보니 카페 한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했다. 멈출 줄 모르고 넘어가는 페이지에, 어- 이러다가 다 읽어버리겠는데, 싶은 마음이 들더니 커피 한 잔과 빵 두조각을 먹는 사이 삼백 여 페이지를 정말 다 읽어 버린 것이다. 세라 워터스의 장편소설 [핑거스미스]를 읽을 당시 이동진의 빨간 책방 팟캐스트에서 김중혁 작가가 이 정도의 재밌는 소설이라면 밤새도록 빠져 읽어 버린다, 라는 뉘앙스로 말해 속으로 거짓말도 잘한다고 비하했었는데 ([핑거스미스]는 무려 832쪽에 이른다.) 가능한 일이란 걸 실감했다.
영화 [아버지와 이토 씨] 스틸 이미지
소설을 줄곧 읽어온 이래로 한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소설은 처음이라 내심 뿌듯했다. 한 자리에서 완독을 이끈 것은 정말 살아 있다고 착각이 들 만큼 생기 넘치고 위트 있는 인물들이었다. "~따위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다." 라는 말을 일삼으며 매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를 닮았고 (아버지는 기분이 좋을 때면 무언가 시야에 들어오는 것마다 불평을 해대며 스트레스를 푼다.) "~는 도망가지 않으니까." 라며 답답할 정도로 낙천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이토 씨는 친구 J를 닮았다. (J는 두루뭉술한 약속을 해놓고 지켜도 그만이고 안 지켜도 그만인 태도인데 그게 밉지 않은 묘한 타입의 친구다.) 아야의 아버지와 이토 씨뿐만 아니라 아야의 이모, 오빠, 올케 언니도 내 주변에 있는 인물들과 매우 닮았다고 느꼈다. 역시 좋은 소설 작품 속 캐릭터는 언제나 독자 주변에 있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준다.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몰입해 소설을 읽을 수 있었던 또 한가지 이유는 저자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이를 전문 용어로 플롯이라 하나? 아야의 1인칭 시점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크게 시간 순서대로 그려지지만 각 장이 새로 시작될 때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핵심 장면을 먼저 보여준 후 이전 장면과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한 시도 놓지 않고 보게 되는 리듬감을 이루었다. 발단부터 절정에 이르는 상승 곡선이 일직선이 아니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주가 상승 곡선을 닮았다랄까. 주식을 해본 적은 없지만, 주식이 하향새로 접어들더라도 팔지 못하는 건 아직 주가가 정점을 찍지 않았으니 다시 오를 게 분명해, 라는 기대감 때문이리라.
영화 [아버지와 이토 씨] 스틸 이미지
지금부터 소설과 영화의 본격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다시 소설. 아야의 아버지가 줄곧 애지중지하며 펼쳐 보이지 않았던 상자의 정체는 아버지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머니와 연애했던 추억이 깃든 마을의 감나무가 불타면서 탄로 난다. 그 상자 속에 소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가족의 소중함이 드러나 가슴 뭉클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상자 속 물건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소설에서 그 정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큰 감동을 받았다.
아버지는 가출한 뒤 걱정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느긋하게 온천을 즐긴 뒤 고향 집에 있었다. 전기와 수도가 모두 끊긴 집이었지만,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낭만이 있고 가치관을 형성한 소중한 장소였다. 이토 씨의 도움으로 아버지가 고향 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야는 오빠와 이토 씨를 이끌고 아버지를 찾아간다. 다시 도쿄로 아버지를 모시려는 자식들과 그곳에 어떻게든 살 거라는 아버지가 실랑이를 벌이다가, 야영이나 다름없는 하룻밤을 고택에서 보낸다.
다음날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토 씨까지 가세하여 설득한 끝에 결국 아버지를 도쿄로 모시고 가는 데 동의를 얻었다. 거센 폭풍 속에서 떠날 채비를 하던 중 벼락이 집 근처 감나무에 떨어졌고 감나무의 불길이 집에 옮겨붙어 순식간에 타들어 갔다.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집에서 꼭 가져와야 했던 것이 있으니, 바로 의문의 상자.
불길 속에서 황급히 상자를 들고나오던 아버지는 그만 상자를 놓쳐 내용물이 허공에 흩어졌다. 상자에 있던 것들은 정체는 싸구려 식기들이다. 그것들은 허공에 흩날리며 불길을 눈부시게 반사했다. 식기들은 오빠 집에 머물던 시절 아버지가 상점에서 훔친 것들이었다. 아버지도 왜 훔쳤는지 분명히 답하지 못한 식기 절도 사건은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먼저 나섰던 올케언니 마저 아버지를 멀리하게 만든 계기이기도 했다.
영화 [아버지와 이토 씨] 스틸 이미지
왜 아야의 아버지는 식기를 훔쳤을까? 저자는 소설 끝까지 그 이유를 완전히 밝히진 않는다. 다만, '나는 왜 아버지가 그런 것을 훔쳤는지, 그 이유를 알아.' 라며 해 질 녘 학교를 가만히 응시하던 아버지를 떠올리는 아야의 독백으로 다양한 해석의 여지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 순간 아버지가 아야에게 했던 이 말을 떠올랐다. "가족끼리 저녁을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아버지가 자신도 모르게 식기를 훔쳤던 것은 따뜻했던 가정의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가정의 따뜻함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더 나아가 공동체의 채온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마음을, 저자는 소설을 통해 다독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소설 내내 아야는 아버지가 중농 소스를 먹는 건 야만인이라 비하하며 돈가스에 우스터 소스를 고집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아야의 마음을 움직인 건 얼마 전 아버지를 여윈 직장 동료 간마니에 씨의 조언이었다. (간마니에 씨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다.) "아야는 중농, 아버지는 우스터, 한 집에 두 개의 다른 소스가 놓여 있어도 좋지 않을까. 어느 쪽이 어느 쪽에 맞추는 게 아니라, 어느 한 쪽이 옳다고 단정해 버리지 말고. 제각각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사용하면, 그걸로."
아야가 아버지에게 그렇듯, 가족이 끔찍히 싫은 건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평생을 함께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보다 더 넓은 공동체, 사회에는 나와 맞지 않는 꼴불견 투성이다(물론 내 입장에서지만). 우리가 나와 다른 타인을 혐오하지 않고 어우러 살며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해답은, 소설 속 간마니에 씨가 아야에게 했던 조언에 있지 않을까. 한 집에 두 개의 다른 소스가 놓여 있어도 좋다. 굳이 한쪽에 맞추지 않아도 가족은 가족이고, 공동체는 공동체다. 중요한 건 서로 다른 소스의 취향을 존중하고 저녁을 함께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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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 밑줄
여름에, 아버지. 서툰 것 두 개가 겹쳐 굉장히 우울하다. 원래 아침은 힘든데, 오늘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다.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그들의 포근한 식탁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에게 있어 그것은 영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먼 지평선에 존재하는 정경이겠지. 왜냐하면 아버지에게는 '집'이 없으니까.
아버지가 오르던, 엄마가 올려다 보던, 그리고 두 사람의 따뜻한 시간을 지켜 주었던 그 감나무가, 불타고 잇다. 완전히 두 동강이 나서, 요란하게 불기둥을 내뿜으며 타고 있다.
식사를 위한 온갖 도구가 골판지 상자에서 튀어나와 유유히 허공을 떠돌았다. 불꽃을 비추며 모두 날카롭게 반짝이며 강렬한 빨간 빛을 발한다. 그것은 아름답기까지 한 정경이었다. 하나하나는 작지만 그 하나하나에 생명이 깃들어 있는 듯한, 그런 빛.
나는 머지않아 아버지를 따라잡겠지. 그리고 우산을 건넬 테지. 그때 내밀 말에,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을 거야.
빛발이 점점 강해진다. 나는 계속해서 달린다. 아버지의 등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