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펫을 1년 동안 배우면서 느낀 것들

2025. 6. 23.

광고 회사에 다니던 무렵, 프로젝트를 위한 배경 음악을 찾다 재즈를 접하게 되었다. 대표님의 추천으로 마일스 데이비스를 들었고, 이후 쳇 베이커와 빌 에반스 같은 좀 더 대중적인 재즈 아티스트의 음악에 빠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미드센츄리 북 & 재즈'라는 테마로 에어비앤비 공간을 기획하면서, 재즈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닌 관심사의 중심이 되었다. 쳇 베이커의 트럼펫 선율을 따라 휘파람을 불다가, 문득 '트럼펫을 배워볼까?'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당근마켓을 통해 트럼펫 수업을 검색했고, 망원동에서 두 명의 선생님과 면담을 거쳐 지금까지 1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최 선생님을 만나 매주 금요일 아침, 트럼펫을 배우고 있다.

중고로 구해서 연습하고 있는 야마하 트럼펫 YTR-3320

 

소리 하나에도 온몸이 필요하다

트럼펫은 피아노처럼 손가락만으로 음을 누를 수 있는 악기가 아니다. 맑은 소리 하나를 내는 데에도 입술, 혀, 얼굴 근육 - 앙부슈어(Embouchure), 복부의 압력까지 모든 신체를 동원해야 했다. 지금도 완벽한 음을 내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간혹 운 좋게 '얻어 걸리는' 느낌이 든다. 앙부슈어를 다듬고 복식호흡을 연습했지만, 얼굴 근육이 쉽게 피로해져 연습이 지칠 때도 많았다. 그래도 "연습은 빼먹어도 수업은 빠지지 말자"는 다짐으로 꾸준히 이어왔고, 어느덧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소리가 맑아지는 순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예상치 못한 '도'의 고음이 맑게 울려 퍼졌을 때다. 나는 낮은 '도'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솔 이상의 음역대에서는 힘이 들어갔다. 복부 압력과 앙부슈어가 맞지 않아 무리하게 소리를 밀어내던 내게, 선생님은 ‘힘을 빼고 부는’ 법을 지도하셨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어느 날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높은 '도'를 소리 내는 것을 경험했고, 그 한순간의 감각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무언가 억지로 되지 않던 것이, 스르르 열리듯 열리는 느낌이었다.

 

음 하나가 가르쳐준 마인드셋

흥미롭게도 어떤 사람은 높은 음을, 또 어떤 사람은 낮은 음을 어려워한다고 한다. 선생님은 “어떤 음을 먼저 불었는지가 기준이 된다”고 말해주셨다. 나는 낮은 ‘도’를 기준으로 트럼펫을 불기 시작했다. ‘솔’보다 높은 음은 어렵게 느끼지만, 만약 높은 ‘도’부터 불었다면 ‘솔’은 쉽게 불었으리라. 이 사실은 내게 꽤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태어난 환경, 처음 접한 기준이 어떻게 인식을 만들고, 그 인식이 삶의 반경을 결정짓는다는 것. 부잣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큰돈을 경험에 투자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반면, 가난한 사람은 그 자체가 큰 허들이 되듯이. 트럼펫을 통해 나는 ‘생각의 기준’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앞으로도 한 소절씩

지금 내 목표는 쳇 베이커가 연주한 듀크 조던의 ‘Glad I Met Pat’ 테마 부분을 맑은 음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이 곡의 분위기를 나만의 숨결로 표현해 보고 싶다. 1년 전, 선생님의 트럼펫을 처음 손에 쥐고 불어보던 순간이 생각난다. 당시에는 모든 게 서툴기만 했지만, 지금의 나는 분명 성장해 있다.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단지 기술을 익히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씩 바꿔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아 간다. 앞으로 1년 뒤에는 어떤 소리를 낼 수 있을까. 내가 내는 작은 소리가 점점 나를 닮아가기를, 그리고 그 소리가 내 삶에 큰 변화의 울림으로 퍼져 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