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간사이 엑스포 2025를 다녀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이 글은 다녀오자마자 썼어야 했지만,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엑스포라는 이름 아래 모였던 거대한 열기 속에서 느꼈던 것은 감동보다 피로, 기대보단 허탈함이었기 때문이다. 기록하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좋지 못했던 감상을 정리하는 데에 시간차가 필요했다. 이제서야 마음을 조금 정리하고 이 경험을 기록해두기로 한다.
그랜드링에서 내려다 본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 2025 전경
최악의 방문 예약 시스템
엑스포 관람에서 가장 기본적인 관문이 되어야 할 입장 및 파빌리온 예약 시스템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사전 예약은 ‘한 달 전’, ‘7일 전’, ‘3일 전’, ‘당일’의 네 타이밍으로 나뉘며 모두 추첨제였다. 예약 웹사이트의 UIUX 디자인도 가장 불편하도록 설계되었다. 어떤 제도인지 이해는 되지만, 당첨되지 않으면 파빌리온 자체를 볼 수 없는 구조는 관람의 기회를 운에 맡기게 만들었다. 인기 없는 파빌리온을 고르려 해도 실시간 정보나 힌트도 부족했고, 필자는 한국관을 제외한 모든 예약 시도에서 실패했다. 당일 현장에서 예약이나 대기를 노렸지만, 긴 줄과 혼잡한 동선, 쏟아지는 비, 불친절한 안내까지 겹쳐 결국 포기했다. 그 결과 내가 관람한 파빌리온은 한국관과, 예약 없이도 입장이 가능했던 카르티에 우먼스 파빌리온뿐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예약 시스템은 관람객을 배려하지 않는, 최악의 구조다.
차라리 안 봤으면 좋았을 한국관
그렇게 어렵게 입장한 한국관은 더욱 실망스러웠다. 세 개의 테마 전시는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고, 기획의도나 메시지 모두 모호했다. 특히 마지막 전시였던 손녀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정서적으로도, 연출적으로도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관람 후,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민망함을 느끼며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미래’를 보여주어야 할 공간이 오히려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잘 준비된 여느 대학의 졸업 전시회보다 못한 이 기획을 만든 이들이 한국의 문화계에 계속 남아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 2025 한국관 미디어 파사드
엑스포 건축 그 자체는 감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정을 아예 후회하게 만들진 않았던 단 하나가 있었다. 바로 건축 그 자체다. 이 엑스포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만나온 건축가들의 실현물을 직접 걷고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오키 사토(Nendo), 구마 겐고, 시게루 반, 사나아(SANAA), 노먼 포스터, 그리고 특히 도요 이토. 그의 작품인 그랜드링(Grand Ring)은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거대한 링 구조를 따라 걷는 동안, 도시와 자연, 인간과 구조물이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적인 통찰이 공간 전체에 녹아 있었다. 단 5만 원의 얼리버드 입장권으로 이 공간을 걸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비용은 아깝지 않았다.
국제적인 행사와의 거리
이번 엑스포가 나에게 맞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어쩌면 이런 국제적인 행사의 구조 자체가 내 여행 방식과 맞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본래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환경을 피하는 성격이다. 첫 경험이었고, 그래서 많은 것을 기대했고, 결국 그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졌다. 기록이 늦어진 이유도, 아마 그 실망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 글을 누군가 읽고, 엑스포를 방문할지를 고민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겨둔다. 더 자세한 감상은 아래 사진과 함께 남긴다.
오사카 엑스포 개최에 맞추어서 새롭게 개통한 유메시마역지하철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 곧장 엑스포 안내문이 보인다이날 장대비가 내렸다 예보보다 더 많은 양이라 당황했다비 예보 소식이 미리 있었어서 준비해간 우의와 장화사람이 너무 많은데 비까지 오니 많이 힘들었다작은 우산에 비를 피하며 긴 대기줄을 기다렸다입장 후 마스코트 먀쿠먀쿠 2D 그림으로는 별로였는데 대형 피규어로 보니 조금 귀엽다가장 큰 기대를 했던 도요 이토의 그랜드링 실물영접! 엄청난 스케일에 압도당했다.그리고 두번째로 기대했던 오키 사토가 전시 디자인에 참여한 일본관. 온리 예약제라 볼 수 없었다. 허탈해라.예약 없이 현장 대기로 볼 수 있었던 우먼스파빌리온 전시를 관람했다여성의 목소리와 기여를 조명하는 감각적이고 서사 중심의 전시가 인상적이였다.우먼스 파빌리온 2층에 마련된 정원오기노 토시야 씨가 전시의 메시지인 지속 가능성과 연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정원이라 한다.우먼스 파빌리온 전시 관람을 마치고 그랜드링을 오르기로 한다.내부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큰 스케일감에 또한번 압도당한다.파빌리온을 올라서 보아도 멋지다.그랜드링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서 내려다본 사람들의 모습.본격적으로 걷기로 한다. 목적지는 오후에 예약된 한국관 방면.상부는 복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아래쪽 길은 좀 더 빠르게 장소를 이동하는 용도인 듯하고 위쪽은 천천히 건축물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듯하다.그랜드링에서 내려다본 오사카 엑스포 전경그랜드링에서 내려다본 오사카 엑스포 전경. 보고 싶던 프랑스관이 중앙 왼쪽에 보이고, 그 옆으로 미국관이 보인다. 예약에 탈락한 것에 아쉬움만 가득하다.좀더 위쪽으로 올라 내려다 보니 부지가 더 한눈에 들어오고 시각적으로 여유롭게 느껴졌다.마침 드라마틱하게도 구름이 걷히고 해가 들기 시작해서 그랜드링이 더욱 멋지게 보였다.그랜드링에서 내려다본 오사카 엑스포 동측 출입구의 모습. 내가 저 길을 걸어 왔다.그랜드링을 걷다보니 도착한 한국관. 아직 관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주변에 있는 식당가를 찾았다.중국식당에 들러서 국수한그릇을 먹었다. 매우 자극적인 맛.주변 학생들이 들고 다니던 타코야끼. 아내가 먹고 싶다 해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완전히 해가 나고 청명해진 하늘. 몸은 이미 다 젖어서 지칠때로 지쳤다.한국관 관림 시간까지 2~3시간 정도가 더 여유 있어서 부지를 산책했다.부지 곳곳에 공우언으로 꾸며져 있다.중앙공원에는 기념품 샵과 식당, 카페가 있다.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이용하긴 힘들다.산책하다 발견한 독특한 건축물. 애초에 아이들을 위해 설계된 것일까? 아이들이 엄청 좋아한다.이래저래 시간을 때우다 (현장 대기로 관람할 수 있는 파빌리온이 거의 없다시피 함) 한국관으로 돌아간다.한국관의 미디어 파사드. 이런저런 미래지향적인 영상이 보여지는데 메시지는 알 수 없다.예약한 시간이 되어서 예약자 줄로 빠르게 입장한다. 참고로 한국관은 예약하지 않아도 현장대기로 관람할 수 있다.본격적인 관람 전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과정이 있는데, 할땐 재밌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걸 왜 한건지 이해할 수 없다.한국관 현장 대기줄. 나처럼 파빌리온 예약에 다들 실패해서 현장 대기가 가능한 파빌리온에 몰려들었을 것이다. 한국관 전시는 최악이었다. 위 본문 글에서 간단한 감상을 참고해 주세요.세번째로 관람하고 싶었던 사나아의 건축물. 이곳도 현장대기로는 입장할 수 없다.세련된 건축물. 잠깐 서서 건축물을 감상했다.당일 예약으로 저녁 시간대에 오션돔을 관람할 수 있었지만 힘들어서 볼 마음이 썩 사라졌다.본 건 없지만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가려 한다.가기 전 그랜드링을 배경으로 멋진 분수쇼가 펼쳐졌다. 이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돌아가는 길 마주한 먀쿠먀쿠.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아내와 특별한 추억이 될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