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25.
건축을 통해 열린 창의성의 문
미국 중서부 출신의 젊은이들처럼,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도 자신의 미래를 동부 도시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그가 향한 곳은 시카고였고, 그곳에서 그는 일리노이공과대학교(IIT)에서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건축은 아블로에게 창의적인 표현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상력을 이해하는 법까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특히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건축물들은 그의 오랜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아블로가 입학한 IIT 건축대학은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크라운 홀(Crown Hall)'에 위치해 있었고, 그는 이 공간의 명료함과 구조미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이민자 가정의 현실과 감춰진 열정
아블로는 원래 위스콘신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이는 그의 열정이 아니라 부모님의 바람이었습니다. 아프리카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그는 흔히 그렇듯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중 하나가 되기를 요구받았습니다. 그러나 학창 시절부터 DJ 활동을 하며 예술적 감수성을 키웠던 그는, 졸업 직전 르네상스 시대 미술사를 접하며 자신의 예술적 흥미를 자각하게 됩니다. 미켈란젤로나 카라바조의 빛과 그림자 표현기법(키아로스쿠로)은 그에게 예술이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결국 그는 실용성과 예술성이 결합된 건축을 통해 자신만의 창작 경로를 찾아갑니다.
‘프레젠테이션’이 만들어준 영향력의 토대
IIT에서 아블로는 건축이 단지 설계가 아닌 ‘설득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지도 교수였던 프랭크 플루리(Frank Flury)는 건축 교육의 핵심이 바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아블로가 이후 패션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핵심 기술이 되었습니다. 그는 늘 자신감 있게 의견을 펼쳤고, 옷차림과 모델 작업에서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플루리는 아블로가 그래픽 디자인에도 큰 관심을 보였으며, 그의 작품은 다른 학생들과 확연히 다른 스케일과 구성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건축은 결국 다른 창작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
아블로는 건축가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얻은 문제 해결 방식과 창조적 사고는 패션이라는 영역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그는 작업을 ‘프랙티스(practice)’라 불렀습니다. 실천이자 연습이며, 늘 발전하는 과정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는 이론과 아이디어를 실제 옷으로 구현하며, 자신의 철학을 현실에 적용해 나갔습니다. 그의 접근은 완벽한 결과보다 과정 그 자체를 중시했습니다. 아블로에게 모든 작업은 완성보다 탐구의 연장이었습니다.
디자인 너머, 문화의 문을 두드리다
버질 아블로는 단순히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이디어와 감성을 사회적 언어로 번역하는 창작자였습니다. 그가 추구한 패션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질문과 사고,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도구였습니다. 건축 교육을 통해 그는 자신의 시각을 구체화하는 법을 배웠고, 이 경험은 패션뿐 아니라 예술, 음악,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그의 작업에 일관된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는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이너이자, 시대정신을 실험하는 사상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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