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B 서울 / 서울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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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학교 동창 결혼식에 갔더니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많았다. 어색함보다는 반가움이 앞서서 예식장을 총총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인사했다.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보기에도 그런 활기찬 모습이 낯설었는데, 친구들은 “야, 막 어제 만난 것 같아. 너 여전하네.” 라고 말했다. 여전하다니, 내가 중, 고등학생 때 이렇게 밝게 인사하는 학생이었던가, 아닌 것 같은데. 실없이 여기저기 웃고 다녔던 것 같긴 하다. 난 기억력이 좋지 않은데다가 사실과 달리 내가 원하는 쪽으로 기억하는 편이라서 타인이 그랬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수밖에 없다. 어쨌든 반가웠던 건 진짜다.

 

취업난이라지만, 친구들 대부분 직업을 가졌더라(그런 친구들만 온 걸지도 모른다). 그동안 공감대를 이룰만한 시간이 없었다보니, 요즘 뭐하며 어디서 지내는지 한 사람씩만 얘기해도 하루를 족히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지낸다고 하면, 지방에 사는 친구들은 ‘서울 사람’이라고 날 치켜세워 주었다. 그럼 난 “서울은 각박해서 살 곳이 못된다.”라며 맞받아친다. 나도 막연히 서울을 동경했을 때가 얼마 전인데. 내가 거기 살고 있네.


* * *


이달 GQ에는 [20's 30's 40's]이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서울에서 지금 내 나이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인터뷰다. 연령대별 사람들의 서울살이를 어느 부분에선 공감하고 어느 부분에선 의아해하며 읽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수도권에 나고 자라며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서울을 오갔다는, 시인으로 서울에 독립해 살며 책을 둘 만한 투룸을 구하기에도 벅차다, 라는 내용의 황인찬 시인의 글을 특히 공감했다. 나도 서울 생활이 벅찬데, 벅찬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여유롭다는 건 전혀 아니고, 다들 이렇게 사는 거 아닌가, 라며 무감각하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건 아니구나, 여유롭고 충족한 삶이란 바로 저런 거군, 이라고 느낄 때 내 삶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힘들지만.

 

그래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사는 이유는 직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로 문화의 다양성 때문이다. 스물여섯까지 지방에 살며 느낀건 서울은 문화의 중심지요, 지방은 변두리라는 것. 너무 보고 싶으나, 대중성이 없어서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한 영화는 서울에서만 개봉하기 일쑤고, 볼만한 전시도 서울에 열렸으며, 갖고 싶은 패션·리빙 브랜드도 서울에 다 있었다. 마이너로 살아가기에 지방은 문화가 다양치 못한 것. 처음엔 이런 서울의 문화적 다양성을 동경했는데, 이게 또 익숙해지니 당연한 듯 무감각하다.



매거진B 서울을 읽으니 무감각해진 도시에 대한 감각이 되살아난 것만 같다. 매거진B 서울은 패션, 라이프스타일&디자인, 스테이, 뮤직, 다이닝, 커피의 6개 라이프스타일 신을 선정해 서울을 들여다보는데 읽는 내내 맞아, 서울은 이런 멋진 면을 가진 곳이었지, 라며 무뎌진 도시 감각을 일깨웠다. 특히 각 신별 '키워드' 꼭지에는 분야 전문가들이 분석한 신의 흐름을 짚어서 지금 서울의 문화 흐름은 어떤지, 그중에 나는 어디쯤 있는지를 한발 물러나 가늠할 수 있었다. 20대 후반, 서울을 살고 있는 나는 아마도 “아주 작은 집일지라도 그 안에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가 놓였을 때의 충만함을 알게 된”, 최소한 알려고 노력하는 부류가 아닐까.

 

서울의 모든 걸 담아야 한다는 강박도 없고, 납득할만한 전문가의 식견 위주로 서울의 문화 최전방을 담백하게 다루어서 좋았다. 이렇게 놓고 보니, 서울은 사회가 후퇴하나 문화는 전진하는 양면성을 지닌 도시같다. 각박하게만 느껴지던 이 도시의 일면은 에너지가 넘친다.


자하 하디드 Zaha Hadid의 유작인 DDP 앞마당은 서울패션위크가 열리는 일주일 동안 10~20대 젊은이들이 멋지게 꾸미고 와서 뽐내고 과시하고 즐기는 공간으로 탈바꿈하잖아요. 서울 패션 특유의 스트리트적 젊음과 역동성은 현재 다른 패션 도시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대표적 키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그 코리아 신광호 편집장)


30대 젊은 친구들의 주요 관심사가 조금씩 리빙으로 넘어오는 단계라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한데 리빙 시장이 30대를 맞이할 준비가 안돼 있는 거죠. (aA 디자인 뮤지엄 김명한 대표)


한데 1~2년 사이에 젊은 친구들이 제 쇼룸을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좋아하는 가구에 대해 먼저 묻고, 그 가구를 직접 경험하고 갑니다. 누가 디자인했는지, 몇 년도에 생산했는지 저보다 잘 아는 친구가 있어서 깜짝 놀랄 때도 있습니다. 가구를 집으로 직접 배달해보면 그 집의 환경을 알 수 있거든요. 아주 작은 집일지라도 그 안에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가 놓였을 때의 충만함을 알게 된 것이죠. (mk2 이종명 대표)


외국과 비교하면 휴가가 짧은 한국에서 장거리 이동의 번거로움과 이것저것 챙겨야 하는 피로감을 줄일 수 있는 스테이케이션은 충분히 매력적이죠. 지속적인 경기 불황은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도심에서 즐기는 여유로운 휴가라는 트렌드를 만들어냈어요. (에바종 오수경 이사)


트렌디한 카페가 급증하자 오히려 심미안을 가진,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는 세대가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제대로 된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문화 운동처럼 하나 둘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것이죠. (이코복스커피 이우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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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담긴 의견 5

    • 안 그래도 이번호 나온 거 보고 반갑더라고요. 제가 애착을 갖고 거주하는 도시를 다루었다고 하니 ㅋㅋ
      말씀하신 대로 서울은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죠. 그래서 전 여길 벗어나기 힘든가봐요.

    • 동감합니다. 주위에선 여차하면 지방으로 내려와서 살라고 하지만, 아마도 평생 서울에서 살게될 것 같아요. 그럴만한 매력이 있는 곳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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