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 립반윙클의 신부

2016. 10. 3.

이제 한 달쯤 되었을까, 모든 SNS 계정을 삭제했다. 딱히 이 기점으로 모든 SNS 계정 삭제, 라는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일이다. 간혹 계정을 삭제하긴 했지만, 일주일도 안 되어서 다시 되살리곤 했는데, 이렇게 단번에 모든 계정을 삭제하고 마음 편하게 지내게 된 나 자신을 보면 조금 놀랍기도 하다.


SNS 계정을 일상생활과 적정한 거리를 두고 사용하는 친구들을 보면 존경스러웠다. 나는 예쁜 걸 보면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트위터에 글을 올렸고, 지인들에게 무언가 공개적으로 알릴 일이 있으면 페이스북에 글과 사진을 올렸다. 각기 다른 계정은 다양한 내 자아를 표현하고 기록하는 수단이지만, 이것들은 한데 어우러져 '나'라는 존재로 거듭나지 못하고 뒤엉킨 채 삶의 표피를 벅벅 긁는 것처럼 불편하게 느껴졌다.


* * *


누구에게나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에 적어 서랍 속에 넣어 두고 싶은, 그런 비밀 같은 이야기가 있다. 글로 쓰면서 정리해야 하지만, 숨기고 싶고 부끄러운 생각이 있다. 감상적인 사람은 순간의 마음에 그런 생각을 SNS에 올리게 되고 후회한다. 그러니 나처럼 지나치게 감상적인 사람에게 SNS는 득보다 실이 많은 세계가 아닐까.


모든 SNS 계정을 삭제하고 나서 한 달 밖에 지나진 않았지만 느낀 변화는 당연히 SNS(가상세계)에서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고 그걸 그대로 현실 세계에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 시간에 가족과 친구와 전화를 하고 뉴스와 책을 읽고 드라마와 영화를 본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소설, 드라마, 영화 등 픽션에 더 빠져 살게 되는 게 현실 세계라고 하기 무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남의 시선에 의식하지 않고 나 자신을 검열하는 시간이 줄어든 건 확실하다. 그만큼 내 의식과 정신세계도 더욱 안정적으로 바뀐 것 같다. 마치 우주 속에 떠다니던 자아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쑥쑥 자랄 준비를 마친 기분이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사진집과 영화, 소설로 모두 봤다. 영화가 국내에 개봉하기 전에 유어마인드에서 [립반윙클의 신부] 사진집을 샀다. 단순히 사진이 아름다워서.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의 예고편을 보듯 사진을 넘기며 이야기를 유추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공간의 분위기와 배우의 감정으로 이야기를 유추해보는 즐거움이라고 할까나.


지난주에 국내에 개봉해서 CGV 아트하우스에서 영화를 예매했다. 그리고 소설책으로도 나왔다고 해서 소설책도 주문했다. 주문한 소설책을 받은 다음 날이 영화를 예매한 날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 도입부를 읽었다. 영화에 실망했다. 주인공 나나미의 답답함과 너무나 클로즈업되고 흔들리는 영상에 이야기에 몰입이 되지 않았다. 내 옆에 앉았던 관람객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사람마다 감정선이 다르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영화를 더욱 혹평했을지 모른다.


영화를 다 보고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알게 된 건데, 내가 보았던 2시간 짜리가 아닌 편집이 덜된 3시간 짜리 편집본의 영화이 있다고 하더라. 그러고보니 잠깐 읽었지만, 소설 도입부분의 이야기도 영화에서 빠진 부분이 많았다. 사진집에 나온 영상도 빠진 부분이 있었다. 어쩌면 그런 부분이 빠져서 완성된 그림의 퍼즐을 다 맞추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묘하게 자꾸 영화 속 장면들이 내 일상에서 떠올랐다. 그것도 아름답게(영화 자체의 감동보다는 아름다운 영상 때문이겠지).


* * *


[립반윙클의 신부] 소설은 너무 좋았다. 소설책은 영화를 보고 다음 날 다 읽었다. 영화 속에서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약한 여성으로 묘사되었던 주인공 나나미는 소설 속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의 빈틈은 소설 속에서 몇 개의 문장으로 완벽하게 매워졌다. 그래서 이야기에 더욱 몰입했고 가슴 뭉클한 장면도 많았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SNS에서 쉽게 만난 남자와 결혼한 나나미가 이혼하고 현실 속 삶에 깊이 뻐져드는 이야기이다. 아무래도 영화와 소설을 모두 봤기 때문에 영상이 자꾸 떠오른다. 소설은 22개의 장으로 나뉘지만, 영화 속에서 나나미가 방황하는 세 개의 장면을 기점으로 세 개의 이야기로 나뉜다. 하나는 처음 SNS로 연락을 주고받은 남자와 첫 만남에서 그를 기다리며 방황하는 장면, 하나는 그 남자와 이혼하고 현실 세계에 내던져졌을 때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장면, 또 하나는 립반윙클을 처음 만난 날 수많은 인파 속에 립반윙클을 놓치고 방황하는 장면. 이 세 장면 뒤로 전 SNS 속에 자아를 숨기며 살던 나나미가 점차 현실로 그 감정을 드러내며 성장하는 세계가 단계적으로 담겼다, 라고 감상했다.


특히 이야기가 절정을 이루는 배경인 립반윙클의 저택은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화산, 독이 있는 수중 생물들로 은유 되는 불안함으로 가득한 세계이다. 안정만을 좇던 나나미가 세상에 내던져지고 불안으로 가득한 세계를 거친 뒤에 홀로 서고 거짓과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과정은, SNS와 현실 속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어디부터가 진실인지 확실치 않은 나 자신에게 묘한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주었다.


책 속 밑줄 (모음)


이 글에도 '좋아요'가 연속적으로 달렸다. '결혼 활동 편' 안에서 한바탕 축하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나나미는 그런 상황이 이상하게 거짓말처럼 느껴졌고 자신의 글도 거짓말 같았다.


애착이 가는 계정이었다. 지금까지 여기서 쌓은 인간관계도 있었고, 친구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오늘로 끝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SNS의 관계란 얼마나 덧없는 존재인가. 계정을 일부러 삭제하지 않아도 글을 입력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그곳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행복해지면 나는 부서져 버려. 그래서 차라리 돈을 내고 사는 게 편해. 돈은 분명히 그런 걸 위해 존재할 거야. 사람들의 진심이나 친절함 등인 너무 또렷이 보이면 사람들은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워서 다들 부서지고 말걸? 그래서 모두 돈으로 대신하며 그런 걸 보지 않은 척하는 거야. 나나미,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부서져 버릴 것 같아.


나나미는 그녀들의 세계에 압도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곳이 마시로가 살던 세계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인정받지 못한 세계. 있어서는 안 될 세계. 만일 그렇다고 해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면 안 되는 인간은 없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인정받지 못해도 그녀들이 살아가는 힘에는 굉장한 무언가가 있었다. 마시로가 그랬다. 살아가는 에너지 그 자체였다.


@캄파넬라

고마웠어요. 잘 자요. 립반윙클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