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양품 MUJI 크리에이터 5인의 대화 / 무인양품 디자인

2016. 1. 23.

무인양품의 모기업 '양품계획'의 방향성을 정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고문위원단'의 존재다. 고문위원단은 브랜드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 디자이너로 구성된 조직이다. 현재 무인양품 고문위원단은 그래픽 디자이너 하라 켄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고이케 가즈코, 프로덕트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 인테리어 디자이너 스기모토 다카시, 이 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13  무인양품을 이끌고 있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매년 20%대 고도성장하고 있는 브랜드의 저력을 살펴보자. 편집자 첨가



(왼쪽부터) 가나이 마사아키 양품계획 회장과 자문위원단 고이케 가즈코, 스기모토 다카시, 하라 켄야, 후카사와 나오토


가나이 마사이키 양품계획 회장│양품계획에 입사해 영업본부장, 전무, 사장직을 거쳤다. 고이케 가즈코 크리에이트브 디렉터│무사시노 미술대학 명예교수로 무인양품 창업 이후 고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스기모토 다카시 인테리어 고문위원│무인양품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인테리어 분야를 맡고있다. 하라 켄야 커뮤니케이션 고문위원│무사시노 미술대학 교수로 일본 디자인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후카사와 나오토 프로덕트 고문위원│다마미술대학 종합 디자인학과 교수이며 일본민예관 관장직을 맡고 있다. 편집자 정리


  


가나이 마사아키 우리는 중소기업입니다. '팔기 위한 물건 같은 거 만들지 말자.' 중소기업이어야만 이런 이야기를 진심으로 계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덩치는 커지겠지만 정신은 중소기업이어야만 합니다. 현장과의 거리감도 포함해서 말이죠. 219 아시다시피 무인양품의 구체적인 개념과 무인양품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이들은 다나카 잇코 씨를 중심으로 한 크리에이터들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본의 논리와 극단에 있는 '인간의 논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죠. 218



고이케 가즈코
 당시 우리에게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자 하는 의식이 있었어요.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활하는 사람'의 시점에서 어떤 걸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어하는가. 사람은 이런저런 것들을 원하기 마련인데 그것과 사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다나카 잇코씨나 쓰쓰미 세이지(종합 유통 회사 '세존 그룹' 대표이자 소설가) 씨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죠. 106



스기모토 다카시
 다나카 잇코 씨는 무인양품을 정말 좋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말이죠. 디자이너로 무인양품과 관계했다기보다는 한 사람의 사상가로서 열렬히 무인양품 일을 했습니다. 143 사내 전시회 같은 행사가 있었고 거기 이런저런 것들을 출품해야 했는데, 아마 그게 고문위원단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이건 약간 과하지 않느냐, 여기는 부족한 게 아니냐' 그런 이야기로 설왕설래하면서 조금씩 정리정돈해가다보니 고문위원회 같은 형태가 만들어지게 된 거였죠. 141


  


고이케 가즈코 시대가 거품 경제로 향해가고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제 우선이 아닌, 생활에 뿌리내린 것, '있는 그대로의 것'이 지니는 가치를 제공해가자, '근본이 되는 것'에 원점을 두고 가자, 이런 공감을 크리에이터측과 경영측이 서로 나눌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랬기 때문에 카피라이팅 작업을 하면서도 무언가를 소리 높여 강조한다거나 이미 있는 가치관을 끌어온다거나 하기보다는 일단은 우리가 시장에 내놓을 상품 그 자체에 대한 공부부터 확실히 해나가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108



가나이 마사아키
 2001년, 2002년이 매출로는 최악이었는데, 고문위원단과의 관계가 유명무실해진 시기도 바로 그때였습니다. 2002년 다나카 씨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반년 전 쯤 '세대교체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으니 하라 켄야 씨를 소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 당시 저는 상품개발과 영업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리브랜딩이라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무인양품의 철학을 다시 한 번 점검해 회사 내외부에 전달하기 위해 하라 켄야 씨, 후카사와 나오토 씨와 함께 논의를 거듭했습니다. 그 결과가 2003년에 발표한 '무인양품의 미래'라는 광고였어요. ─그 안에 무인양품의 모든 철학이 집약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보자면 그때의 논의가 정말 중요했던 거죠.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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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仁良品の未來 무인양품은 브랜드가 아닙니다. 무인양품은 개성과 유행을 상품으로 삼지 않고 상표의 인기를 가격에 반영시키지 않습니다. 무인양품은 소비의 미래를 멀리 내다보며 상품을 만들어왔습니다. 무인양품은 '이것이 좋아' '이것이 아니면 안 돼'처럼, 강한 기호성을 유발하는 상품 생산 방식을 바라지 않습니다. 무인양품이 목표로 하는 것은 '이거이 좋아'가 아니라 '이것으로도 좋아' '이것으로도 충분하다'라는 이성적인 만족감을 고객에게 안겨드리는 일입니다. 즉 '─이'가 아닌 '─으로도'가 무인양품의 목표입니다. (이하 생략) 64



하라 켄야 해외 사람들이 무인양품을 이해할 때 특히 중요한 개념이 '공'이라는 콘셉트입니다. 82 가장 상징적인 것이 '지평선' 시리즈 포스터라고 할 수 있어요. 지평선이 보일 뿐,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 말 없이 고객과 눈을 맞출 뿐이죠. 무인양품의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이런 식으로 만들어 집니다. 모델 선정, 문자의 조합, 사진의 톤, 카피라이팅에 이르기까지, 유행과는 일체 선을 긋고 작업합니다. 84



후카사와 나오토
 '생활잡화를 취급하는 기업이기에 만들 수 있는 가전을 개발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해오던 중이었습니다. 36 테이블 위에 남는 가전제품은 '도구'로서 노출되는, 단순한 기능을 가지고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한정될 거예요. 예를 들어 식빵처럼 크기가 일정한 것을 다루는 토스터 같은 가전은 결코 작아질 일이 없습니다. 이러한 가전이야말로 무인양품이 개발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불필요한 기능을 가능한 없애고 필요한 기능만 탑재해 적정 가격으로 시장에 제공하고 싶었죠. 이런 가전이라면 해외 시장에서도 반드시 수요가 있을 것이고 가격경쟁에 함모로딜 일도 없을 테니까요. 37



스기모토 다카시
 무인양품과는 창업 당시부터 함께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제 자식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요. 처음 아오야마 1호점을 만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장 디자인의 기본은 거의 동일합니다. 제 나름의 '자연스러움'이 콘셉트지요. 그리고 나무와 철판, 벽돌이 제 콘셉트의 소재입니다. 도쿄 미드타운 롯폰기점은 무인양품이라는 존재에 대해 드디어 우리가 자신감을 가지게 됐던 무렵의 매장입니다. 괜히 잘 보이려 할 필요도 없고 억지로 눈에 띄려 하지 않아도 좋다. 그런 마음가짐이었습니다. 136


  


가나이 마사아키 좁은 의미에서 무인양품은 디자인이라는 것에 대한 안티테제로 태어났습니다. 물건을 팔기 위한 디자인이나 디자이너의 개성을 표출하기 위한 디자인에 대해 '미래의 디자인은 그렇지 않다'며 시작된 것이 1980년의 무인양품 이었습니다. 더 이상 디자인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상품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디자인이라는 단어의 사용법도 바뀌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무인양품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디자인을 말해왔고, 그런 의미에서 무인양품은 디자인컴퍼니이기도 합니다. 220

  



이 글은 <무인양품 디자인> 책에 실린 크리에이터들의 인터뷰를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중략된 내용은 ─ 기호로 표시하였고, 발췌된 책 페이지는 문장 뒤에 밑줄을 그어 표기하였습니다. 인물사진은 구글검색 대표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