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미술관 글린트 기획 '즐거운 나의 집' 건축 전시회 리뷰

2014. 12. 12.




아르코미술관 ‘즐거운 나의 집’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대학로에 가서 김수근 선생님의 적벽돌 건축물을 보고 있으면 삶이 예술로 둘러싸인 듯 마음이 따듯해집니다. 제 고향인 구미에 있는 ‘구미시 예술의전당’도 김수근 선생님으로 적벽돌이 인상적인 대규모 작품인데 마음이 따뜻해 지는건 두 건축물이 오마주된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향이 떠오르는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집’을 주제로한 전시가 열립니다. 2014년 기획 공모에 선정된 글린트(Glint)와 아르코미술관의 협력 기획전으로 제목은 ‘즐거운 나의 집’입니다. 전시는 고 정기용 건축가의 인터뷰에서 착안되었습니다.

 

“우리 삶에는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의 집, 현재 살고 있는 집, 살아보고 싶은 꿈속의 집이 있다. 이 세 가지가 하나 된 집에 사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참 행복한 사람이다.” 정기용, 2005

 

전시명 : 즐거운 나의 집(Home, Where The Heart Is)

전시기획 : (주)글린트

전시장소 : 아르코미술관 제 1,2 전시실, 2층 아카이브실 외부, 1층 스페이스 필룩스

전시기간 : 2014년 12월 12일 ~ 2015년 2월 15일

관람시간 : 오전 11시 ~ 오후 7시 (매주 월요일 휴관, 문화가 있는 날 9시까지 연장 운영)

관람요금 : 무료











 

1. 살았던 집


고 정기용 건축가의 문학적인 문장을 쫓아 기획된 만큼 전시 또한 따뜻하게 시작됩니다. 제 1전시실에는 ‘살았던 집’을 주제로 전시가 이루어집니다. 구체적인 작가와 작품 설명은 이야기가 길어지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은 현관, 거실, 주방, 개인 방, 화장실, 거실 그리고 마당 등의 구역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전시는 이 구역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작품을 전시합니다. 미러볼로 반사된 영상이 비추는 통로를 따라 과거의 집으로 회귀하는 듯한 입구가 인상적입니다. 현관문을 여면 가장 먼저 반기는 센서등과 “다녀왔습니다“라는 발판이 과거의 집을 소환합니다. 아래가 뚫려 반대편이 듬성 듬성 보이고 가정용 몰딩을 두른 가벽이 가정적인 분위기를 고취시킵니다. 전시 중간에 만나는 유명인의 인용문도 분위기와 함께 가슴깊이 와닿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글린트는 관객이 직접 전시작품과 소통하도록 했습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책을 읽어도 되고, 둥근 공기 침대에 마음껏 누워 영상을 감상해도 좋습니다. 1전시실 중간에 계단이 설치되 망원경과 함께 전시장을 둘러볼 수 있는데 그곳에 올라 집에 대한 기억의 조각을 콜라주한 아련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너무 과하게 도취했던 걸까요? 방문하신다면 꼭 그곳에 올라서 보시기 바랍니다. 망원경으로 입구 쪽을 바라보며 이상형 찾기 놀이를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군요. 제가 본 망원경 속에는 배나온 아저씨만 있었습니다.













2.살고 있는 집


2층으로 오르면 ‘살고 있는 집’으로 구성된 제 2전시장 입니다. 제 2전시장은 꽤 충격적이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임산부나 노약자는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수많은 문이 있고 그 앞에 80만원부터 900만원? 까지 월급이 발판에 적혀 있습니다. 자신의 월급에 맞춰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됩니다. 원색으로 둘러싸인 화려한 공간이라 처음엔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저도 그랬고요. 이 작품을 설치한 옵티컬레이스의 설명을 들으니 조금 이해가 됐습니다. 문을 열고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월급 받을 수 있는 ‘내 집 마련 대출’입니다. 그리고 우측이 부모님의 재산입니다. 자신의 월급을 X축으로, 부모님의 재산을 Y축으로 놓으면 자신의 좌표가 나오겠죠? 그 곳에 서서 바닥에 적힌 숫자가 30년 뒤에 내가 갖고 있는 돈입니다. 물론 저는 마이너스였습니다. 제 설명이 정확한지 모르겠군요. 아무튼 제겐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저의 좌표를 찾아가는 과정이 꽤나 흥미로웠는데 현실을 직시하고 나니 가슴이 아파옵니다. 이토록 현실의 냉담함을 돌직구로 경험시킨 전시는 없었던 것 같군요. 이 작품을 지나면 김기조 작가의 포스터 작품입니다. ‘선착순’, ‘평생’, ‘마지막’, ‘기회’ 4가지 익숙한 단어가 있습니다. 앞 작품을 체험하고 난 뒤라 그런지 더 가슴에 비수처럼 꽂힙니다. 경쟁사회, 좁은 사회의 문, 생존과 같은 단어가 떠오르네요. 제 청춘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제 2전시장은 현재 우리의 집의 현실을 직설적으로 보여줍니다. 1전시장과 분위기가 반전됐군요. ‘즐거운 나의 집’ 전시 제목은 완전히 반어법이었습니다. 제목을 ‘네 집은 얼마야?’로 고치면 더 전시를 잘 나타내겠군요.

 





3.살고 싶은 집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제 3전시장 ‘살고 싶은 집’으로 향합니다. 사실 1전시장과 2전시장을 보고 3전시장을 엄청나게 기대했습니다. 이렇게 내 마음을 들었다 놓고서 어떤 결말을 보여주려 하는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대가 컸던지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구체적인 해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택 설계 도면과 설명, 집에 대해 생각해 볼 많은 책들 그리고 해외 주택정책 등의 사례를 전시했습니다. 하지만 기획자의 설명을 들어보니 이해도 되었습니다. ‘살았던 집’과 ‘살고 있는 집’을 통해 집의 의미와 현실 문제점을 파악했으니 ‘살고 싶은 집’에 대해 직접 생각해 볼 여지를 건축가의 작업과 책, 해외 사례 등을 통해 남겨 두는 것이었습니다. 전시를 보고난 저의 마음 상태를 보니 기획자의 의도가 완전히 전달된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내가 살고싶은 집에 대해 생각해 봤으니까요. 문제는 여전히 답답하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찾을 수 있는 돌파구가 너무 좁습니다. 집과 부동산 문제를 다룬 전시회가 많은 이에게 보여 지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혼자’가 아닌 ‘우리’, ‘함께’, ‘같이’(장그래가 오차장님에게 했던 말인가요?) 돌파구를 모색해야겠습니다. 그러니 다 함께 아르코미술관을 찾아 전시를 보도록 하죠. 아, 그리고 제 3전시장에서 대구에서 공부하던 시절 알게 된 오피스아키텍톤의 작품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작지만 좋은 인연이 모여 저의 세계관이 만들어 지나 봅니다.


올 해들어 건축 관련 전시가 유행같이 많아졌는데요, 분명 좋은 일이겠죠? 방금 리뷰한 전시와 함께 보면 좋은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이 기획한 ‘협력적 주거 공동체(CO-LIVING SCENARIOS)’ 전시입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전시가 집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내 놓지 못하고 개인에게 감동과 현실직시 그리고 생각할 여지를 남겼다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협력적 주거 공동체’ 리서치 프로젝트 전시는 현재의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 주거에 대한 비교적 구체적인 돌파구를 9가지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저는 두 전시 모두 봤지만 ‘협력적 주거 공동체’는 내일 있을 패널토크에 다녀와서 함께 리뷰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