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토 가나에 소설 [유토피아] / 행복을 목전에 두고 서성이는 착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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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찾아가 위로를 갈취하는 일. 선의라는 말로 타인의 불안을 자신의 안도감으로 삼는 폭력들. 애초에 그것은 폭력일까, 자존감일까.


자존감을 지키려 할 때면 나는 어떤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 위에 세워지는 것 같이, 자존감 역시 누군가의 자존감 위에 세워지는 것만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 행복해질거야’ 라는 개인의 의지는 분명 선의에 가깝지만, 어쩐지 주변 사회를 불행하게 하는 악의가 저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지독한 입시 경쟁에 시달린 나는 행복과 불행을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초 납작한 형태로 쥐고 살아가는 기분이다.


미나토 가나에 <유토피아>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 소설 [유토피아]는  작가가 ’선의가 향하는 끝에 어쩌면 해결하기 힘든 결과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품고 쓴 작품이라고 한다. 소설 [유토피아] 속 도시 출신의 도예가 ‘스미레’는 파트너를 따라 이주한 조용한 항구 마을인 ‘하나사키 초’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며 지역 활성화를 위한 공예 운동을 벌이는 인물이다.


스미레는 도시를 떠나 아름다운 바다 전망을 가진 곶으로 공방을 옮겨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지만, 미디어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신예 공예가인 대학 동창을 몰래 질투한다. 한편, 그는 하나사키 초에서 자신의 작품성을 높이 사지 않는 마을 사람들에 향한 섭섭함과 무시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마주하며 조금씩 자존감을 잃어 간다.


스미레는 공예가로서 자신의 성공을 곧 마을의 번영으로 여긴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마을에 기대 자신이 유명해지고자 하는 악의라기보다는 공예 작품의 재료가 되는 좋은 흙과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가진 마을에 활력이 깃들길 바라는 순수한 선의에 가깝다. 하지만 자신의 자존감이 마을을 번영으로 이끌 것이라는 스미레의 행동을 마을 사람들은 불편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전격적으로 ‘선의가 향하는 끝’을 내세운 작품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주제는 흐려지고, 과거 마을에서 일어난 미제 사건을 추리하는 방향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바뀐다. 그리고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답게 앞의 이야기를 뒤엎는 강한 반전과 함께 이야기가 끝난다. 분명 몰입해서 즐겁게 책을 읽었지만 작가가 선전포고한 ‘선의가 향하는 끝’이라는 주제의식이 더 선명하길 바랐기 때문에 아쉬웠다.


자존감을 세우려는 내 마음이 타인을 불행하게 할지 모르고, 결국 나는 타인의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피해망상일까, 아니면 나는 멍청하리만큼 착한 사람일까. 미나토 가나에가 끝내 해결하지 못한 ‘선의가 향하는 끝’을 다음 소설에서 적절한 작가의 언어로 매듭지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마을을 도망치듯 떠나는 스미레의 마지막 모습은, 유토피아를 목전에 두고도 주변을 서성이다가 결국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라며 스스로 합리화하는 나와 같이 느껴졌다. 그곳이 확실히 유토피아인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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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담긴 의견 4

    • 자존감이라는게 접고 살면 편한데 그게 참 어렵더라구요.
      말씀대로 자존감이라는 어찌보면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하는건데...누군가를 밟는 다는 생각은 미처 못해봤네요.
      이러면 안되는데 책보다 그 위에 조니워커가 눈에 더 뛰네요 ^^;;

    • 자존감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버리는 것 역시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드네요. 자존감을 지키려는 노력은 자존감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버리려는 노력은 자존감을 지키는 게 힘들거나 불편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어쩌면 '자존감'이라는 감정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자존감은 불행의 다른 이름 같기도 ^^ 심야에 적는 댓글이라 지나치게 감상적입니다. 조니 워커 한 잔 마시고 자야겠어요. 서른을 앞두고 위스키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 보심님 후기는 언제나 책을 읽고 싶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얼마 전에 고등학교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는데 모두들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더라구요. 저는 안정에 나를 맡기지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느껴지는 섭섭함과 무시, 그리고 부러움과 질투가 꼭 저랑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에 확신을 가지는 일처럼 어렵네요. 내 확신이 강할수록 너의 확신도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할텐데 그게 너무나 쉽지 않아요. 어쩌면 유토피아는 그런 것이 자연스러운 곳이 아닐까요ㅎㅎ

    • 미나토 가나에의 글을 읽다 보면 저도 무감각하게 잊고 지내던 제 내면의 추한 모습을 문득 들춰내 놀라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한편, 그게 저만의 추함일 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이라는 생각에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왠지 겸손하게 살아야 겠다, 라고 다짐하게 됩니다. 유토피아가 있다면, 그곳은 타인을 자신의 기준으로 섣불리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된 소설입니다. 찌알님 댓글에 대한 댓글로 적절한 지 모르겠어요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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