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레 요코 [카모메 식당] / 마음 속 카모메 식당을 가꾸는 수행

니시카와 미와의 <아주 긴 변명>은 올해 읽은 책 중 최고로 칠 정도로 재밌게 읽은 소설이다. 얼마 전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와 <기사단장 죽이기>를 연달아 읽으며 ‘하루키 월드’의 환상적인 느낌에 사로잡혀 지냈다. 현실 감각이 뚜렷한 소설이 그립던 그때 마음 한편에서 계속해서 맴도는 작품이 <아주 긴 변명>이었다.


<아주 긴 변명>을 다시 읽다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고 싶어서 <어제의 신>과 <유레루>를 읽었다. 두 책 모두 그리 길지 않고 몰입도가 높은 책이라 눈 깜짝할 새 읽어버렸다. 그러는 동안 하루키 월드에서 길을 잃은 듯 헤매던 마음이 서서히 제 위치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니시카와 미와 소설들 <유레루> <아주 긴 변명> <어제의 신>


타이베이 여행을 다녀오고 몸살이 났다. 긴 연휴를 보내면서 그간 쌓아온 생활 리듬을 완전히 잃었다. 다시 일상의 리듬에 몸을 맡기려니 쉽지 않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나니 정신은 덜 힘들지만 몸은 여전히 무겁다. 내일 금요일, 다음날 토요일 그리고 그 다음날 일요일이 지나고 다시 한 주를 바쁘게 보내야 일상의 감각을 되찾을 것 같다. 어쩐지 휴가가 한낮 꿈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닮은 것 같고, 거꾸로 일상은 현실감 짙은 니시카와 미와의 소설을 닮은 듯하다.


최근에 읽은 책은 무레 요코의 <카모메 식당>이다. 영화를 재밌게 봐서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주문했는데, 막상 받고 보니 특별 한정판으로 나온 손에 착- 감기는 예쁜 양장본이다. 종이 질감도 좋고 글자 크기도 적당해서 책장에 꽂아 두고 오래도록 바라 보고 싶은 책.  여행을 일주일 정도 남겨둔 때부터 시작해서 여행 직전까지 읽었다. 여행을 막 앞둔 때의 설렘과 함께 읽어서인지 더욱 감상에 젖었다.


무레 요코 소설 <카모메 식당>


책을 읽고 사치에의 아버지가 줄곧 했다는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다.’ 라는 말이 일상에서 자꾸 떠오른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 싫을 때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다.’ 몸살 기운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다.’ 퇴근 후 아무 신나는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갈 때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다.’ 라고 속으로 되낸다. 어쩐지 그 말을 하면 사치에의 다부진 얼굴이 떠오르며 작은 힘이 샘솟는다.


카모메 식당은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핀란드에 오게 된 세 중년의 일본 여자들이 ‘카모메 식당’에서 일하며 겪게 되는 일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소설이다.  핀란드에 오게 된 사연이라 해봐야 터무니없다. 자신이 가게를 낸다면 어느 나라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곳이거나(사치에), 세계지도를 펼쳐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찍어 떠나온 곳이거나(미도리), 환승할 때 짐을 잃어 체류하게 됐다거나(마사코), 이런 식이다.



이렇다 할 큰 사건이 일어나진 않지만 작은 일에도 진심을 다하는 그녀들의 마음 씀씀이를 보고 있자면 가슴 뭉클하다. 스스로 가진 신념을 꼿꼿이 지키거나, 타인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 한 줄, 말 한 줄이 너무나 따뜻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들처럼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든다.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다.’ 라는 말을 가슴 한편에 두고 자신만의 방식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저마다 가슴 속에 있는 ‘카모메 식당’은 절로 번성하지 않을까.


영화를 감명 깊게 봤다면, 영상에 담긴 헬싱키 풍경을 닮은 무레 요코의 문체로 그린 그녀들의 뒷 이야기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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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여독이 쌓이셨었나봐요.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셨겠죠? ^_^
      전 이 작품 영화로만 접했는데, 사실 영화 자체가 재밌는지는 모르겠고..
      .(뭔가 이해 안 되는 조연 캐릭터가 있어서;;)
      대신 따뜻한 영상미라든가, 차근차근 조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은 좋았었어요. :)

      앗 그러고보니 글번호 기준으로 천번째 글이네요. 축하드립니다. :D

    • 댓글 남겨주셨을 때는 덜 나았었는데, 이제 다 나았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이해 안 되는 조연은 아마.. 미도리 씨인 것 같네요 ㅋㅋㅋ 좀 독특한 캐릭터라 아마 그일 것으로 추측해봅니다. 이 영화는 각 잡고 볼 때보다는 멍하게 볼 때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마침 오늘 영화를 틀어놓고 밀린 집안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 글이 1000번째 포스팅이군요. 감사합니다! 새마음으로 글 써야겠어요 ㅎ

    • 안녕하세요? 전 안녕합니다!
      일상의 리듬을 찾기 쉽지 않으시겠어요, 저도 리듬을 찾으려고 하는데 어렵네요.
      책은 영화와 좀 다른가요? 뒷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책으로 봐야겠죠??:)
      저 역시 작은 일에도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비가 계속 내리네요. 비와 함께 이제 정말 가을이 오겠죠.
      환절기 건강 잘 챙기셔요^.^
      수행도 화잇팅입니다!

    • ㅋㅋ 네 감사합니다. 오늘도 수행 실패!지만, 내일은 수행에 성공하기로. 책과 영화가 85% 정도 같지만 세세한 부분은 달라요. 다르다기 보다 영화에 나오지 않은 인물들의 배경이 소설에 조금 길게 다루어집니다. 좋았어요 :)

    • 몸살은 다 낫으셨나요?
      여행이 다녀오면 리듬이 깨져서 출근하면 너무 힘든데...고생하셨습니다.

      영화도 아직 못본 사람인데,.일본특유의 담백하고 위트넘치는 그런...내용인가보네요...
      저도 출근하기 싫을때는.."아 너무 행복해"라고 계속 되새기는데..ㅋ
      다 비슷한가봅니다 ㅋ

    • 감사합니다. 덕분에 씻은듯이 나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 행복해, 라고 생각하며 힘을 내시다니. 긍정적이시고 아주 바람직하네요 ㅎㅎ 저는 거꾸로 하기 싫은 걸 할 때 투정을 부리며 끝까지 미루다 하는 쪽이라서 배워야 겠어요. 내일 월요일 아침에 도전해보겠습니다. 한 주 잘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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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디자인 기행.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담는 블로그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운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