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 더 이상 볼 수 없는 풍경을 동력 삼아 나아가는 사람들
할아버지가 몇 해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다. 그 증상이 심하진 않지만 금방 보고 들은 것을 잊고 했던 말을 또 한다. 듣기로 일본 교토에서 자란 할아버지는 초등학생 시절 해방과 함께 한국에 왔고 얼마 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할머니와 결혼하고 농사를 지었는데 농사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다행히 할머니가 야무지셔서 농사를 문제 없이 짓고 사 남매를 번듯이 키울 수 있었다. 농사에 재주가 영 없었다지만, 할아버지는 호감형인 데다가 능변가이고 정직한 성품을 타고 났다. 그 덕에 오랫동안 마을 이장을 지냈고 새마을 운동 시절 마을 현대화 사업을 잘 이끌기도 했다고. 치매를 앓은 이후엔 요양원에 다니시는데, 본인이 '출퇴근한다'고 말하는 걸 보니 그곳에서 자신이 보살핌을 받는다기보다 다른 노인..
2017.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