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리뷰 /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2015. 5. 23.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오픈하고 첫 주말이라 사람들로 붐빌 것으로 예상하고 오픈시간 오후 12시에 맞추어 갔는데요, 괜한 걱정을 했더군요. 한산했습니다. 다른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처럼 현대카드를 제시하고 신분증과 가방을 맡기고 라이브러리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지난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프리뷰에서 여러가지 아쉬운 점들을 꼽았습니다. 도서나 이용자를 위한 공간이 아닌, 전시를 위한 도서관, 브랜드 이미지를 위한 공간이라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실제 경험하고 나서 그런 생각은 더 확실해 졌습니다. 하지만 바이닐 음반의 경험은 정말 좋았습니다. 오늘 방문으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차근차근 리뷰하겠습니다.


지난 금요일 이태원에 문을 연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건축가 최문규는 경사를 활용하여 소통의 메세지를 극대화하는 열린 구조를 구상했다.



건축가 세지마 카즈요가 지형과 건물의 공존을 위해 특유의 경사를 그대로 남겼다.


1969년 알타몬트에서 열린 롤링스톤(The Rolling Stones) 무료공연의 한 장면을 포착한 빌 오웬스(Bill Owens)의 사진. 스트리트 아티스트 JR의 작업으로 벽면과 천장을 가득 채운다.


다양한 문화 리더들과 함께 이끌어가는 문화집결지 

건축이 파격적입니다. 최대 이윤 추구인 자본주의 기업이 기획한 프로젝트 치고 이렇게 주어진 면적을 비운 건축은 없었던 것같습니다. 공간을 비움으로서 얻은 것은 서울의 시원한 풍경입니다. 언더그라운드로 입장하는 진입로가 될 것인데 이곳에 사람들이 줄지어 선 풍경이 떠오릅니다. 그 뒤로 1960년대 히피 문화의 상징적인 롤링스톤 공연 사진이 뒤덮었습니다. 젊은 예술음악의 정신을 재현하고 문화집결지를 지향한다는 현대카드의 포부가 옅보입니다.


두명의 건축가, 애매한 건축

초기 건축설계를 세지마 카즈요(Sejima Kazuyo)가 맡아 지형 그대로를 남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내 건축가 최문규가 최대한 개방적인 설계를 했다고 합니다. 왜 세지마가 계속해서 건축을 진행하지 않았는지가 의문입니다. 세지마와 최문규의 계획이 얼마만큼 포함된 것인지 명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간격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 뮤직라이브러리 팜플릿의 공간 소개에 '2010년 프리츠커 상 수상자'라는 세지마 카즈요에 대한 소개가 꽤 거슬립니다. 아무리 초기에 그 형태를 남긴다 했어도 1층 카페의 좌석까지 이어야 했나 싶습니다. 고정되지 않은 의자와 테이블이 위치를 옮기며 바닥과 이격이 생겨 흔들리게 됩니다. 이 부분은 건축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고 세지마라면 지형을 살린다라는 초기 아이디어를 사용자의 편리성까지 수용해 잘 매듭지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외부공간을 아마 야외 공연장 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 같은데, 기왕이면 일반 대중도 가볍게 들러 쉴 수 있고 풍경을 즐기기 위한 공간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차갑고 위압감이 드는 그 공간에 확실히 마음 편하게 머물 수는 없는 분위기입니다. 경사를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렸다면, 더 부드러운 느낌이 들도록 조경 디자인도 함께 하고 벤치도 더 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초기 기획에 비해 콘텐츠나 공간 활용도가 아쉬운 부분입니다.


인더스트리얼 느낌이 지배적인 공간에 천정과 조명 그리고 가구를 빅토리아 풍으로 라운지 공간을 꾸몄다.


지형 그대로를 살린 -평평하지 않은 바닥으로 가구와 테이블이 흔들린다.


1층 리셉션 공간에서 2층 라이브러리 공간은 엘리베이터로만 이동할 수 있다.


뮤직라이브러리에는 50년대 이후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족적을 남긴 1만여 장의 엄선된 아날로그 바이닐과 3천여 권의 음악관련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그래픽 아티스트 Vhils의 작품이 있는 라이브러리 공간. 책이 진열된 통로가 좁아 사람이 지나가면 비켜줘야 한다.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전경. 바이닐 음반을 들을 수 있는 6개의 자리가 있다.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좌석은 없다.


바이닐 음반의 첫 경험. 마이클잭슨의 HEAL THE WORLD. 온 세상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무한 감동.


뮤직 라이브러리,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디자인 라이브러리 내부는 어떨까요. 1층 카페에서 2층 라이브러리로 오르는 이용자용 계단이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로만 오를 수 있는데, 바로 한 층을 굳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게 이상했습니다. 라이브러리는 생각보다, 하지만 역시나 좁았습니다. 라이브러리치고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상 하나 없이 서서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2층에 비치된 책들을 고르는데, 통로가 너무 비좁아 지나는 사람이 있으면 잠시 자리를 비켜줘야 합니다. 롤링스톤 전집이 있다지만 책 하나 펴 보기 힘든 공간에서 무용지물이라는 느낌입니다. 책을 찾기도 불편하고 읽기도 불편한, 정말 전시를 위한 도서관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이닐 음반의 경험은 이 모든 아쉬움을 뒤로할 만큼 정말 좋았습니다. 저는 처음이었거든요. 라이브러리에 비치된 아이패드로 마이클잭슨 'Dangerous' 음반을 찾고 대여받아 'Heal the world'를 들었습니다. 그때 온 세상에 평화의 기운과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디지털 음악에 익숙한 저에게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는 전반적으로 공간이 세련되었고 콘텐츠도 아주 좋지만, 실용성이 너무너무 떨어지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바이닐 음악이 너무 매력적이니 가끔 찾아야 겠습니다. 아, 그리고 밤에 언더스테이지에서 공연도 한번 즐겨봐야 공간을 확실히 평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