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8.
안그라픽스 <나, 건축가 구마겐고> 리뷰
구마겐고의 강연을 들어본 주위 친구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의 언변은 최악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건축가를 앞에두고 건축덕후가 졸음이 밀려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일인가? 안도다다오의 강연은 건축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도 매료시키는 힘이 있는데 말이다.
언변은 부족하지만 그의 글솜씨는 좋다. 건축가로서의 고민과 사색을 활자를 통해 독자에게 최대한 전달한다. 글을 읽다보면 그의 생각속으로 빠져 하나하나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언변보다 글솜씨가 좋은 그는 어쩌면 진정한 건축가다. 자신의 건축을 화려한 언변으로 드러내는 것보다 담담하게 글로 지어낼 줄 아는 진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진지함은 표지의 다소 부담스러운 얼굴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는 현대건축에 비판적이다.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르꼬르뷔제, 안도타다오와 같은 건축가의 태도는 물론 콘크리트로 대변되는 재료에 대한 시선도 날카롭다. 현대건축은 장소와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19세기는 교통통신의 발달로 지구가 하나의 마을처럼 급격하게 가까워진 시기다. 그 시기의 건축은 유리와 철, 콘크리트라는 기술력과 함께 어느곳에나 쉽게 지을 수 있는 합리적인 건축이 환영받으며 자연스럽게 장소에 뿌리를 둔 건축은 불편하고 비합리적으로 치부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장소와는 멀어지고 전세계의 건축은 획일화됐다. 장소의 개성을 건축에 담아내는 <약한건축>이 앞으로의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구마겐고다.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고민의 원점까지 드러내는 듯해 구마겐고라는 건축가는 위태롭기까지 하다. 그것마저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인 그는 자신의 약함과 건축적 완성도 사이의 간격을 좁혀 어느덧 세계적 건축가가 됐다. 기존 건축가의 완벽-확고한 느낌과 달리 결점을 먼저 드러내는 건축가,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믿을 수 있는 건축가. 구마겐고는 확고함의 콘크리트가 아닌 유연성의 나무다.
책을 통해 전 세계를 활동하는 그를 통해 각 나라별 건축문화를 스킴할 수 있고 그의 건축 세계관과 구마겐고라는 브랜드가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자신을 4세대라 칭하는 일본 건축가의 계보를 바탕으로 전세계 건축역사를 훑어보는 것도 큰 재미다. 활자의 크기도, 종이의 질감과 점성 모두 매우만족스러웠다. 안그라픽스도 점점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