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5.
PDM사옥 ⓒ남궁선
부산시 수영강 변 망미동에 길가에선 잘 안보이는 성 같은 건물이 있다. 자세히 보면 여러 가지 간판이 붙어 있다. ‘YIIN’이라는 읽기도 어려운 단어와 ‘PDM’, 그리고 ‘el olive garden restaurant’이라는 레스토랑 이름까지 스스로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둔 건물은 레스토랑이면서 갤러리가 되고, 사무실이면서 아트홀이자 사교의 장이 된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이 건물을 만든 사람. 여러 가지 영역의 경계에서 균형을 지키며 조용히 지역 문화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고성호(PDM partners 대표)를 만나 건축과 문화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직함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건축가인가? 나는 경계에 있다. 경계에서 보면 본질이 더 잘 보일 때가 있다. 엘 올리브(el olive)를 ‘비트윈 아트 앤 다이닝(Between Art & Dining)’이라고 소개하는데, 음식과 예술의 경계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니 음식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또 그런 내가 건축을 하고 있다. 나는 그 경계에 있다.
엘 올리브가 고급 레스토랑으로 일반인에겐 조금 부담스럽다. 대중문화도 중요하지만, 격식을 갖춘 상류 문화도 중요하다. 유럽 살롱 문화의 주축이 되었던 가문들이 그 시대에 문화가 꽃필 수 있도록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대중문화와의 균형이 중요하다. 반면 상류 문화만 고집하진 않는다. 경우에 따라 학생들에게 갤러리 무료 관람을 허용하기도 한다. 대신 그때엔 단돈 만 원짜리라도 드레스를 갖춰 입고 와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나는 일종의 체험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격식 있는 문화를 알아야 글로벌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가 좋다 나쁘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애초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생각했나? 그건 아니다. 건축은 태생적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논의하지 않는다면 자기화하는데 한계가 있다.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 15년간 전국을 배낭여행 한 적이 있다. 그때 내린 결론은, 한국 건축의 뿌리는 결국 자연과 삶 속에 자리한 유교, 불교 등 사상적 배경이 합류되며 그것만의 독특한 조형미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알기 전까지 확신이 없어서 건축을 못했다. 나름의 공간 개념들이 이해가 될 때 건물들을 하나, 둘씩 하게 됐다.
요리도 어느 순간이 되면 건축과 비슷하다. 다양한 분야로 나뉜 예술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선상에는 함께 있다. 그래서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지역의 관계성에 대한 고민은 물론 인테리어, 소품까지 관여하니 완성도가 높아진다.
학생 때 특별한 경험은? 주로 유럽 쪽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알바 알토 때문에 핀란드에 한 달 정도 있다든지 안토니오 가우디 때문에 스페인에 한 달간 체류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좋은 건축물을 보면 기분이 매우 좋다. 좋은 건축물이 있던 곳은 항상 좋았고 기억에 남는다.
부산 출신인데 부산의 어디가 가장 좋은가? 부산은 해운대와 마린시티가 제일 좋다. 멀리 보이는 용호동의 산, 출렁거리는 바다, 강이 만나는 곳에 사람이 있고 광안대교를 지나는 차들의 움직임까지 다 보인다. 빌딩 숲에서 바라보는 자연과 도시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세상 시름을 다 잊어버린다. 마린시티의 태생을 보면 정치 경제적으로 문제가 많지만, 아이파크 같은 높은 완성도를 가진 작업을 갖기란 상당히 어렵다. 실제 설계자인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핵가족화되는 사회에서 휴양지 개념의 주거공간으로 설득했을 것이고 회장은 설계자의 의도 작은 것 하나도 변경하지 못하게 했다. 하나라도 시공비를 낮추려는 회사 공무원이나 그냥 설계를 던져버리는 건축가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좋은 공간은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PDM Partners 의 P.D.M은 어떤 의미인가? 프로젝트 디자인 매니지먼트(Project Design Management)의 약자다. 아주 작은 공간이라 도 하나의 프로젝트 개념으로 해석해 일한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설계를 하면 직접 시공해야 하고 또 아쉬우니까 인테리어나 콘텐츠까지 만들다 보니 프로젝트 디자인 매니저가 된다. 이런 방식은 완성도가 높다. 대신 건축주가 우리에게 흡수되지 않으면 프로젝트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건축은 건축주와의 교감이 절반이다. 직원들 교육, 협력업체 교육, 고객과의 교감. 이것들이 현장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고리를 만들려고 한다.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주 힘들어한다. 5년간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공부하는 데 비해 보상이 적기 때문이다. 5년 동안 제대로 문화를 즐기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까워질 게 있을까? 건축문화와 공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알게 될 거다. 이곳에 발을 들여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다.
진로를 너무 좁게 생각해서 그런 것일까? ‘경계’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그 경계가 어디 있을까? 관청에 가보면 공무원의 의식이 굉장히 경직된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들을 건축가들이 가서 바꿔야 한다. 법원의 판사나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문화 수준이라는 것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100명이 건축을 공부한다면 모두 건축가가 될 필요는 없다. 2~3명만 전공을 살리고 나머지는 건축을 기반으로 공무원도 되고 청와대도 가고 사진을 찍거나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과를 나와서 꼭 건축해야 한다는 것은 가장 퇴보된 생각일 수 있다. 영역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특별히 생각하는 인재상은?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자기가 가진 것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회사의 생각을 공유할 포용력이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 처지에서는 힘들 수 있지만 사고가 자유로운 사람이 좋다.
열정과 에너지가 있어야 하고 감각까지 갖춰지면 금상첨화다. 사회에는 건축이나 디자인을 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공간에 대한 이해나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 건축해야 한다. 감이 없는 사람도 와인이 깨어나듯 깨어날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기 위해선 그 사람의 열정과 에너지가 밑바탕 되어야 한다.
<인터뷰 이수진·심명보 10기 학생기자>
2013/07/27 - [diary] - 자신에게 엄격하다는 것
http://www.vmspace.com/2008_re/kor/sub_news_view.asp?idx=5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