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식물 분갈이

광고

한 달에 두어 번 청소 용품을 사러 다이소를 오가는 길에 아현 시장을 지나는데, 그곳을 지날 때마다 화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식물을 길러볼까 싶어서. 집이 서향인 데다가, 과거에 길렀던 식물들이 시들다 죽어버렸던 기억 탓에 그냥 지나치곤 했다.


지난주에도 역시 화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는데 사장님이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빛이 잘 들지 않는 실내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을 추천해주셨고, 예상보다 가격이 싸서 덜컥 식물을 사버렸다. 이름도 모르고 물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도 모른 채, 생각이 날 때마다 물을 주는 상태로 한 주가 지났다.


아현 시장에서 산 이름 모를 식물을 분갈이 해주었다. 얘 이름은 뭐고 물은 얼마나 줘야 할까나.


확실히 처음 가져왔을 때보다 자란 게 눈에 띄었다. 그런데 잎에 누런 얼룩이 들었고 왠지 영양이 부족한 것 같아 분갈이를 해주었다. 적당한 크기의 화분과 거름을 사고, 집 앞 공원에서 돌을 주워다가 옮겨 심었다. 시들한 줄기는 혹시나 다시 잘 자랄까 싶어 원래 있던 플라스틱 통에 심어 두었고, 건강한 줄기만 모아 새 화분에 담았다.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뿌리가 가득 찼던 걸 보니 화분이 비좁았나 보다.



지난주에 이직을 해서 새 회사에 출근을 했다. 그러고 보니 첫 출근하는 전날 화분을 샀던 것 같다. 전에 다니던 직장과 다른 시장으로 옮긴 거라, 스스로 화분을 바꾸었다기보다 토양을 바꾼 기분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품성이나 역량을 ‘그릇’으로 표현하곤 한다. 적절한 때 분갈이를 해주고 가지치기를 하며 정성스레 화분을 기르듯이, 내 그릇을 가꾸어 나가야 겠다.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에서 선물 받은 난에 집착했다던 글이 떠오른다. 해당 수필의 문맥에서 조금 벗어난 의구심이지만, 생명을 ‘소유’하고 ‘집착’한다는 건 조금 위험한 태도가 아닐까. 생명은 ‘소유’한다기보다 ‘공생’하는 것에 가깝고, ‘집착’한다기보단 ‘책임감’을 느낀다는 말이 어쩐지 마음에 더욱 와닿는다.


반려묘 단아에게도, 이름 모를 식물에도 책임감을 느낀다. 마음이 쓰이는 건 사실인데 그것이 집착이라 느끼면 고통이지만, 지켜야 할 대상이라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낀다면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새 직장에 출장이 종종 있을 듯한데 혼자 두어야 할 단아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어찌됐든 이름 모를 식물 분갈이 성공적!
식물이야 잘 자라다오 :)

미니 갤러리

일기/일상다반사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

“보심 블로그.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담는 블로그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운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