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마시키 소설 [데프 보이스] 김영하 소설 [오직 두 사람] / 가족이라는 언어

신랑이 신부 몰래 준비한 편지를 낭독했다. "나에게 좋은 가족을 선물해줘서 고맙다" 라는 내용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신부의 가족은 부모와 두 언니 그리고 늦둥이 남동생으로 이루어진, 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예식장을 찾은 누구라도 속하고 싶을 정도로 활력 있고 사랑스러운 가족이었다.


신부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이종사촌 누나다. 한 달 전 어머니를 통해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그다음은 내 차례다' 라는 끔찍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내 위로 한 명만 빼고 차례대로 결혼했다. 연애, 결혼, 출산을 넘어 인생의 모든 걸 포기한다는 N포세대인 그들은 어찌 이렇게 순서대로 잘만 결혼하는지. 나를 따돌리고 자기들끼리 짜고 연극 결혼하는 걸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나는 청첩장을 받지 못했는데, 조카 결혼식을 위해 지방에서 상경하는 어머니가 나를 초대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수년째 못 본 어머니를 만날 기회이기도 했고, 십 년 가까이 못 본 외가 친척들, 특히 그사이에 키와 효심이 엄청나게 자랐다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남동생 B가 보고 싶었다.

신부인 이종사촌 누나, A와 언제부터 맞먹었더라? 결혼식장에서 A에게 "누나 결혼 축하드려요" 라고 했더니, A는 "어색하게 왠 존댓말이냐" 라며 나를 나무랐다.


신부 위로, 역시 나의 이종사촌인 두 명의 누나가 있다. S 누나는 아름다운 미모와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했고, 장녀인 J 누나는 어른스러웠다(확실히 어른이 맞지만). 어릴 적 기억 그대로다.

외할머니도, 이모도 여전히 유쾌하다. 몰라보게 큰 키와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멋진 성인이 된 남동생 B만 조금 낯설었다.


대가족이라는 포근한 안식처. 연락도 하지 않던 나를 뜨겁게 맞아준 외가족이 고마웠고 그들의 가족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곳에 어울릴 수 없다는 소외감을 느꼈다.

단지 이혼한 어머니를 통한, 언제 끊어질지 모를 가느다란 실로 이어진 것같이 느껴져서 왠지 불안했다. 예식을 마치고 혼자 광역버스에 올랐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불안한 마음이 점차 진정됐다. 익숙한 외로움으로 향하는 평온함.



 데프 보이스

 아저씨는 우리 편? 아니면 적?


마시키의 소설 [데프 보이스]


결혼식이 있기 며칠 전 마루야마 마시키의 소설 [데프 보이스]를 읽었다. Deaf Voice, 농인의 목소리란 뜻이다. 소설은 코다(CODA - A Child of Deaf Adults), 즉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독자를 농인 사회로 이끈다.

소설 속 연대하는 농인들은 서로를 가족이라 부른다. 수화 언어를 공유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추구하는 끈끈한 가족. 그들은 코다인 주인공 아라이 나오토가 그들의 가족인지 적인지 의심한다. '아저씨는 우리 편? 아니면 적?' 과거 살인자로 지목된 농인의 딸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괴롭게 살았던 아라이 나오토는, 17년이 지나 유사한 살인 사건의 수화 통역을 맡으며 그에 대한 답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사회적 약자라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불편하다. 약자라는 단어에 타인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싫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회에 소외된 계층을 생활 속에서 함께 어울릴 기회가 손꼽을 정도로 적기에, 소외계층을 대하는 실제 내 행동은 어떤지 모를 일이다. 단지 이상적인 말만 떠벌리며 스스로를 멋지게 포장하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장애를 가졌더라도 남들과 같은 환경에서 성장하길 바라거나, 그렇게 교육하는 부모와 교육자,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는 성숙한 사회를 지지한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소외됐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은 다 다르기 때문에. 사회가 성장한다는 건 다양한 정체성이 존중된다는 것이리라. 다른 관점과 정체성, 다른 신체를 가진 개인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가장 좋은 교과서는 소설이다. 대부분의 소설 속 주인공은 다양성의 표본이며 소설을 읽으며 독자는 다양한 개인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내 기억에 남는 인물은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 아몬드의 윤재, 편의점 인간의 후루쿠라 그리고 사라바의 다카코.

[데프 보이스]의 아라이 나오토도 그중 하나다. 아라이 나오토는 농인의 편일까? 아니면 적일까? 살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며 답을 찾는 그의 마지막 독백이 마음에 남는다.


어느 쪽인가.

나는 네 적도, 그렇다고 편도 아니다.

너희들을 이해하고 너희들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

들리지 않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들리는 아이.

아라이 나오토는 코다이다.



 오직 두 사람

 요즘은 자주 생각하게 돼요. 오직 두 사람만이 느꼈을 어떤 어둠에 대해서요.


김영하 소설집 [오직 두 사람]


A 누나의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광역버스 안에서는 김영하의 새 소설집의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을 졸면서 읽었다. 꿈속에서 헤매며 읽어서인지, 이야기가 왠지 몽환적이게 느껴진다. [오직 두 사람] 역시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이야기다.


현주는 아버지의 편애를 받고 자란 장녀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깊은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자란 그녀에게 삶의 기준은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 보다 시시한 남자친구, 아버지의 바람에 못 미치는 직업과 같이, 오직 두 사람만 통하는 언어의 세계에 있었다.

동생과 어머니 역시 삶의 기준이 아버지였다. 다만, 가족이라는 허울 같은 울타리에 속했을 뿐 아버지의 사랑에서 소외된 그들은 현주와 반대에 존재했다. 가족이란 좋든 싫든 세상을 대하는 언어가 된다.

현주는 [데프 보이스]의 아라이 나오토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받는다. 성인이 되고, 나이를 먹으며 자신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아버지와의 관계가 유별났던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라는 언어에 귀속될수록 자신은 세상과 점점 멀어지는 듯 보였다. 뉴욕에서 지내는 어머니와 동생에게 도피해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죽고, 쓸쓸한 감정에 휩싸여 제3자인 언니에게 편지를 쓴다. 소설 전체가 그 편지다.


현주는 아버지를 사랑했을까? 아니면 증오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소설에서 찾을 수 없다. 어쩌면 질문 자체가 무의미한지도 모르겠다. 가족은 애증의 관계를 초월한다. 사랑하든 증오하든 가족은 가족이다. 코다가 농인도 아니고 청인도 아닌, 코다는 코다이듯 현주는 현주다. 고유한 언어-정체성을 가진 개인일 뿐이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현주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이다. 가족은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이고 언어다.


결혼식장에서 외가에 대해 느낀 강렬한 감정과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광역버스에서 느낀 편안한 감정이 뒤섞여 일었던 알 수 없는 현기증.

이또한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나와 공유하는 가족이라는 언어다.


저는 생각했어요.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에 대해서요. 이제 그만 화해하지 그래, 라고 참견할 사람도 없는 외로움.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말다툼. 만약 제가 사용하는 언어의 사용자가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면 말을 조심해야겠어요. 수십 년 동안 언어의 독방에 갇힐 수도 있을 테니까. 그치만 사소한 언쟁조차 할 수 없는 모국어라니, 그게 웬 사치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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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제가 아주 존경하는 국문학 교수님이 계셨는데요,
      그 분이 어느 날 강의하시면서 '요즘 한국 소설은 '가족'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 작품이 많다'는 의미의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주인공이 있고,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이 발생하지만 정작 그 주인공과 연결된 가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고요,
      그러시면서 시니컬하게도 '가족이란 건 남이 보지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씀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보심님께서 소개하신 작품은 모두 가족과 관련된 얘기군요.
      '애증을 초월하는 게 가족'이라는 표현에 공감이 갑니다.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는 작든 크든 개인의 의지가 개입하지만 가족은, 특히 부모형제는 그 이전의 차원에 실재하죠.

      <오직 두 사람>이라는 제목을 보고 있으니 롤러코스터의 <두 사람>이라는 노래가 생각나서 듣고 자야겠어요.
      보심님도 좋은 밤 보내셔요. :)

    • 첼시 님 국문학 전공하셨나요? 어쩐지 문학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고 세상을 보는 관점도 애정어리다, 싶었는데 문학 전공자여서 그랬는 지 모르겠어요 ㅎㅎ
      교수님이 어떤 작품이나 흐름을 보고 말씀하신 지 비전공자로서 잘 모르겠지만 제가 본 작품들은 대부분 가족 이야기였어요. 제가 비주류 독자인지도 모르지만요 ㅎ
      부모님이 이혼하신 이후로(어쩌면 부부싸움을 보고 참아야 했던 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나야한다,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의 씨앗이 마음에서 자랐던 것 같아요.
      가족에 대한 소설들을 읽으며 내가 벗어나려고만 했던 가족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었다는 걸 조금씩 깨닫고 가족에게 다가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가족은 개인의 의지 이전의 차원에 실재한다는 말이 와닿네요. 감사합니다.
      첼시님 덕분인지 고양이와 많이 친해졌습니다. 이제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네요. 후추와 탈 없는 장마 보내시길 바랍니다! :)

    • 안녕하세요!

      가족은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이고 언어죠. 정말 깊이 공감합니다. 저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나,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기준이 있을까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다른 관점과 정체성, 다른 신체를 가진 개인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겠어요. 그런데 왜 부모님과 함께 살기는 싫은지... 저의 경우는 '가족'은 다른 신체, 관점,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워요. 아버지, 어머니가 저의 롤모델이며 기준이지만, 가족이 저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해서일까요? 아직 철없는 자식입니다.흑...

      여담인데 지금 한 달 정도 여행하고 있거든요. 비가 엄청 쏟아지던 날에 숙소에서 드라마를 몰아봤던 때가 있어요. [아버지가 이상해]라는 드라마인데(현재 방영하고 있어요!) 한 가족 안에서 많은 생각이 공존하며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드라마의 마지막은 아마도 글머리에 쓰셨던 "나에게 좋은 가족을 선물해줘서 고맙다"이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김영하 작가님 팟캐스트에서 [오직 두 사람] 출간됐다고 들었는데 어서 읽어보고싶습니당*.*

    • 안녕하세요 찌개집알바생님 ㅎ 여기서 제 개인사를 지루하게 주저리 늘어 놓긴 힘들지만 돌아보면 어릴때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성장하면서 질투심이 나는 친구들, 평생 역전할 수 없을 듯한 행복한 친구들은 모두 객관적으로 화목한 집안에서 자란 친구들이랍니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을 폄하하거나 나쁘게 보려는 건 아니구요.
      아마 찌개집알바생 님도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셨기에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건 참 감사한 일이에요.
      포스팅에서도 썼지만, 가족을 미워하든 자신처럼 아끼든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어느 것이 좋고 나쁜 지도 모르겠어요. 저 같은 경우엔 덕분에(?) 독립심과 자립심을 길렀다고 생각해요. 아마 철이 든다는 건, 편협된 가족의 언어로 대하던 세상의 반대편과 균형을 맞추어가는 것 아닐까요? ㅎ
      스마트 TV 어플 pooq 으로 방송을 보고 있는데 인기 프로그램에 항상 [아버지가 이상해]가 있더라구요. 찌개집알바생님이 감동 받으신 듯하니 저도 시간되면 꼭 챙겨보겠습니다 ㅎㅎ
      여행은 잘 하고 계신가요? 조지아 풍경이 아직도 선하네요. 좋은 추억 만드시고 또 안부 전해주세요! 저도 [오직 두 사람] 찌개집알바생님께 추천합니다 :)

    • 가족이란게 참 복잡한거같아요.
      저는 결혼전까지 부모님과 살았는데, 결혼하고 나니 부모님 생각이 많이 하게 되거라구요,
      그리고 자식이 생기니 더 생각나고..
      한편으로는 지금 아들녀석이 좀더 크면 내 곁을 떠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또 섭섭하고.....
      미워도 가족만한 존재가 없는거같습니다.

    • 저는 아이를 낳을 지 확실치 않지만 어떤 기분일 지 궁금합니다. 확실히 부모님과는 다른 느낌이겠지요? 한편으로 아이가 세상을 대하는 기준이 부모가, 내가 된다고 생각하니 좀 두렵기도 합니다. 친절한민수씨 님은 아마 좋은 언어가 되어줄 것 같아요. 언제나 행복한 사진으로 마음 평화 얻고 가는 친절한민수씨 가족의 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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