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먼 나이트 [단편 소설 쓰기의 모든 것] / 회색 대륙의 싱글라이더

2017. 3. 19.

그리고 나도 어느새 그 대륙에 도착해버렸다. '야 뭐 재밌는 거 없냐'의 세계. 운이 좋았다면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다다르게 된다. 이 회색의 대륙에.


아마도 나는 뮤지션 오지은이 수필집 [익숙한 새벽 세시]에 쓴 회색의 대륙에 도착한 것 같다. 간간히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뭐 재밌는 거 없냐, 라고 따지듯 묻지만 다들 없다고 한다. 나와 두 살 차이로 친하게 지내는 형 J는 일 년 전 쯤에 회색의 대륙에 도착한 뒤 담담히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오지은 씨의 생각대로 모두가 언젠가는 회색 대륙에 사는 것 같으니, 나도 익숙해져야지. 별다른 일 없이, 별다른 일에도 별 감흥 없이.


약속 없는 주말인 오늘, 침대에 누워 배달 햄버거를 배불리 먹으며 영화 [싱글라이더]를 보았다. 증권회사 지점장인 강재훈을 연기한 이병헌의 묵직함이 빛난 영화였다. 부실채권 사건으로 모든 걸 잃은 재훈은 아내와 아들이 사는 시드니를 몰래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가족 그리고 자신 마저 잃은 것 같은 상실감에 빠진다. 재훈은 시드니를 떠나며, 우연히 알게 된 지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나씨, 우리가 여기 아무도 모르게 혼자 왔던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면 되지 않을까?"


[싱글라이더] 스틸컷


나는 이 회색 대륙에서 재훈이 말한 대로 아무도 모르게 혼자 왔던 것처럼 조용히 살고 싶다. 밥 먹고 책 살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하며, 거창한 꿈이나 먼 미래의 계획도 없이, 내가 존재하는 듯 안 하는 듯 말이다.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고 작은 일은 소중히 여기며 살면 재미없는 회색 대륙도 버틸 만 하지 않을까. 어쩐지 오지은의 회색 대륙은 [싱글라이더] 마지막 장면에서 재훈이 찾아간 타스마니아를 닮았을 것만 같다.


재훈의 고독함과 독백으로 이루어진 영화에 깊게 빠져 있자니, 대사가 없는 장면에 쓰였을 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을 소설로 읽고 싶어졌다. 각본을 쓴 이주영 감독과 독자인 나 사이에 하얀 종이와 까만 글자 외에 아무런 방해 없이 재훈을 고스란히 전달받아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싱글라이더] 스틸컷


누군가 모든 독자는 잠재적 작가라고 했던가. 책이나 영화를 유난히 감명 깊게 본 뒤 소설을 쓰고 싶은 욕구가 일 때가 있다. 한 달 전에는 불쑥 떠오른 아름다운 장면을 칸칸이 나뉜 빨간 상자에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고 싶은 마음에 이백 자 원고지와 연필을 사서 여섯 쪽 가량 소설을 쓰기도 했다. 쓰다 보니 별 대수롭지 않은 부끄러운 이야기 같아 서랍에 숨겨 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가 쓰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 일 밀리미터 씩 천천히 자라는 것 같은데, 그 마음을 꼬박꼬박 쫓아가 표현할 수 없는 건 고통이다.


소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독자가 아닌 작가의 입장이 궁금해서 데이먼 나이트의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를 읽었다. 저자는 첫 문장부터 소설 쓰는 법은 누구에게 배워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배운 걸 한 가지만 꼽자면, 마치 소설 [아주 긴 변명]의 주인공 사치오가 '인생은 타자(他者)'라고 사별한 부인에게 쓴 것처럼, 좋은 소설을 쓰려면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편 소설 쓰기의 모든 것] 표지


어제부터는 임경선 작가가 수필집 [자유로울 것]에서 추천한 줌파 라히리의 장편 소설 [저지대]를 읽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서는 줌파 라히리를 "지문을 전혀 남기지 않고 등장인물을 다룬다"고 평하며 [저지대]를 극찬했다. 그만큼 저자가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인물에 생명력을 가득 불어넣고 독자는 소설에 깊이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최근 쓰고 싶던 소설이 원고지 여섯 쪽을 넘기지 못하고 끝났던 것은 내가 주인공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내 생각만 말하기 바빴지 진정으로 공감하며 타인의 생각을 경청하진 못한 것 같아 부끄럽다. 내 생각을 쓰면 되는 수필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로 이루어진 소설을 진정으로 쓰고 싶다면, 먼저 타인을 공감하는 능력부터 키워야 할 것 같다.


혹시 내가 평생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비극적인 인간으로 살더라도 싱글라이더와 같은 독백 형태의 소설 한 편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느낀 감정은 굳이 공감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쓸 수 있으니 평생에 걸쳐, 부디 한 편 정도라도 말이다. 몇 해 전부터 머릿속을 휘젓는 생각들을 활자로 꿰어 내놓아야 맑은 정신으로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책 속 밑줄


진정으로 타인에게 공감하는 건 나이가 좀 든 후에야 가능하다. 개중에는 끝까지 공감을 못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런데 공감 능력 없이는 절대 성숙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


사람들에게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 외면하고 있는 자신만의 감정적 문제가 있다. 소설은 간접 체험을 통해 사람들이 이러한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돕는다.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들어보자. 누구든 똑같이 말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말투를 쓰고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어떤 내용을 말하고 어떤 태도로 말하는지를 보면, 그가 어디서 자랐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사회적 계급에 속해 있는지 등등을 전부 알 수 있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칙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정직하게 헌신적으로 써나간다면 진정 보상이 따르는 일이 바로 소설 쓰기라는 사실을 언젠가 깨달을 것이다. 그저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