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 에세이 익숙한 새벽 세시 / 새벽 세시가 익숙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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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상에 앞서 작가 이석원의 추천평을 옮긴다.


“세상에는 나이가 차면 큰 어려움 없이 어른이 되어버리는 사람들과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진짜로 어른이 되기엔 무수한 난관을 거쳐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지은은 전형적인 후자의 인물로, 그가 고생스럽게 써낸 책속의 글들이 빛을 발하리라 짐작하는 이유는 이렇다. 세상에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이 생각보다 많고, 그들에게 필요한 건 서점에 넘쳐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친구 결혼식이 많아서 축의금 내느라 월세가 부족할 지경이다. 지지난 주에는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Y가 결혼을 해서 군산에 갔고, 결혼식이 끝나고 Y보다 두 달 먼저 결혼한 H의 집들이를 하러 목포에 갔다. 내게 Y와 H는 “나이가 차면 큰 어려움 없이(그럴리 없지만) 어른이 되어버리는 사람”, 그에 비해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진짜로 어른이 되기엔 무수한 난관을 거쳐야만 하는 사람” 같았다.


오지은 산문집 [익숙한 새벽 세시] 표지 ⓓ형태와내용사이


오지은의 산문집 [익숙한 새벽 세시]는 출간되었을 때부터 벼르다가, Y의 결혼식에 가는 길 고속버스 안에서, H의 집들이에 다녀오는 길 기차 안에서 읽기 위해 샀다. 하지만 정작 대부분을 잠 못 든 새벽 침대 위에서 읽었다. 나는 잠 못 든 새벽이 익숙하다. “나이를 먹어도 진짜로 어른이 되기엔 무수한 난관을 거쳐야만 하는 사람”은 곧 새벽 세시가 익숙한 사람이 아닐까. 내가 공감한 소설가 편혜영의 추천평을 추가로 옮기자면, “읽다가 여러 번 놀랐다. 내가 쓴 일기인 줄 알았다.”


책 초반부는 교토 여행을 가장한 먹방 에세이가 소용돌이처럼 내 마음을 끌어당겼고, 책 중후반부는 심해처럼 고요했다. 내용은 주로 어른이 되는 것과 꿈을 이루는 것에 대한 저자의 담백한 생각들. 그녀가 책으로 엮은 생각의 일단락이 인생의 정답일리 없지만, 새벽 세시가 익숙한 게 나만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복음처럼 느껴졌다.


책 속 복음 (모음)


좋다는 게 무엇이었지, 만족이라는 것은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이었지. 내용이 전부 바뀌어버린 사전을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 적당함이란 얼마나 충족시키기 어려운 가치인가. 적당함은 분명 뛰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생의 너무 많은 시간이 잠을 청하는 것으로 허비되고 있다. 이 나이쯤 되면 잠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게 되길 바랐는데.


그리고 나도 어느새 그 대륙에 도착해버렸다. '야 뭐 재밌는 거 없냐'의 세계. 운이 좋았다면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다다르게 된다. 이 회색의 대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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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담긴 의견 12

    • 우선 다른 얘기부터 하자면 매거진파노라마5에 참여하셨다는 공지글 읽었어요. 축하드립니다. :)
      저희 동네 근처를 지나가는 버스 노선이기에 왠지 더 친숙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글 제목만 보고 노래 얘기를 쓰신 건가 했는데 산문집이었군요.
      마침 BOSIM님도 제목과 걸맞은 시간대에 읽으신 것 같고요.
      마찬가지로 곡 이름을 따서 책을 낸 이석원이 추천평을 썼다니 재미있습니다. ㅋㅋ
      '적당함'에 대한 글이 공감되어요. '적당'하고, '평범'하고, '보통'인 게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데요.
      그러고보니 이석원의 책 제목도 <보통의 존재>네요.

    • 감사합니다 ㅎㅎ 여행은 잘 다녀오셨나요? 사실 책을 읽기 전에 가수로서의 오지은을 몰랐어요 ㅋㅋ 책을 다 읽기까지도 동명의 제목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첼시님이 알려주시기 전까지 이석원씨가 가수인줄, 보통의 존재를 쓴줄, 그게 역시 동명의 노래 제목인줄 이제 알았네요. [보통의 존재]도 평이 좋았던 듯한데, 약속 없는 주말 밤새 짧고 굵게 읽을 거리가 필요할 때 읽어봐야 겠네요 ㅎ

    • 산문집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는데, BOSIM님의 리뷰를 보니 읽어보고 싶네요..!

    • 소설과 수필을 번갈아가면서 읽는 편인데요, 제가 느끼기에 수필이 진입장벽이 더 낮은 것 같아요. 가장 높은 건 저도 아직 도전 중인 시(Poet)가 아닐까요 ㅎ

    • 오지은씨는 그 바닥에선 꽤 알려진 인디 가수 출신이죠. 고등학교, 대학 초반에 참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책도 내다니 대단한 분이네요. 익숙한 새벽 세시는 오지은님의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 혹시 모르셨다면 한 번 들어보세요 노래와 가사가 꽤 좋습니다. 익숙한 새벽3시라고 검색하시면 됩니다^^또 그녀의 노래중에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 라는 노래도 좋답니다^^

    • 오감이님 오지은씨의 팬이었군요! ㅎㅎ 알려주신대로 노래 들어 보았는데 좋아서 계속 반복재생했어요 ㅋㅋ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좋네요. 정규앨범 1집부터 들어봐야 겠네요 :) 감사합니다.

    • 오지은씨 노래 정말 좋아요!
      저도 노래 얘기인 줄 알았는데 산문집이었네요. 글로 느끼는 '오지은'은 또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합니다ㅎㅎ

    • 아- 오지은씨의 팬이 많았군요. 이거 혼자 소외된 기분인데요 ㅎㅎ 1집 정규앨범부터 미니앨범까지 정주행해서 들어봐야 겠어요. 좋은 곡을 놓칠 수 없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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