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일기] 아이폰 SE / 특별한 일은 별다를 일 없는 날 일어난다

2016. 7. 15.

별다를 일 없는 오후였다. 정오가 지나고 몇 분 눈치를 보다가 누군가 "점심시간이네요, 점심 먹으러 갈까요?" 하면, 누구는 "오늘 외근이 있어서 점심 따로 먹을게요." 하고, 식사 멤버가 정해진다. 유난히 느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오늘 뭐 먹죠?" 라고 물으면, 누군가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하고 답한다. 그러다 어찌어찌해서 메뉴를 고른다. 이게 일상적인 모습이다. 그날도 어김없었다.


그 일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일어났다. 신호등을 막 건넜을 때 손에서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그동안 핸드폰을 떨어트린 일이 많았다. 매번 떨어트린 휴대폰을 집어 들고 액정을 확인할 때마다 (어쩐지 매번 핸드폰을 흘리면 액정이 땅을 보도록 떨어트린다)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이 순간까지도 별다를 일 없는 오후였다.


당연히 당첨되지 않을 복권을 긁는 마음으로 (복권이 당첨되면 대박이고, 액정이 깨지면 쪽박이지만, 어쩐지 복권 당첨이 안되듯, 당연히 액정이 멀쩡하리라 생각했다) '설마' 하고 봤더니 액정이 와장창 깨져 있었다. 허리 높이에서, 마치 나비가 꽃 위에 앉듯 아주 살며시 낙하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와장창 깨졌다. 문자 내용이 깨진 파편의 그림자 때문에 안보일 정도로 와장창 깨졌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매우 긍정적이다. 이런 긍정적인 성격은 닥친 일이 불행하면 불행할수록 빛을 낸다. 음식점에서 주문한 메뉴와 다른 음식이 나와도 뭐 어쩔 수 없죠, 하고 맛있게 먹고, 여행에서 길을 잃으면, 이때 아니면 언제 여기에 와보겠어, 하고 돌아가고, 휴대폰 액정이 깨지면, 뭐 새로 나온 핸드폰으로 바꿔야지, 하고 생각한다(옆에서 보고 있으면 답답한 사람이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긍정적인 데다가 만사가 귀찮아서 일 처리가 빠르다. 남은 핸드폰 약정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바꾸기 위해 통신사에 곧바로 전화했다. 남은 약정 기간을 안내받고, 다른 핸드폰으로 바꿀 수 있는지 물었더니 담당 부서로 바꾸어 주었다. 친절하고 젊은 목소리의 남자 상담원이었다. 자초지정을 설명하기 위해 그에게 "오늘 점심시간에 핸드폰 액정을 깨트렸다"고 말했더니,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아, 저런." 하고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 해주어서 믿음이 갔다. 고객에게 하는 반사적인 서비스인지는 몰라도.


그에게 위약금과 남은 할부금을 설명 듣고 바로 새로운 핸드폰을 주문했다. 중고나라 인터넷 사이트에 잠깐 검색해봤더니, 액정 깨진 핸드폰이 꽤 괜찮은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그걸 팔아서 남은 할부금 대부분을 갚을 수 있었다. 다음날 회사에서 주문한 핸드폰을 받았고, 핸드폰을 샀던 것처럼, 전화 한 통으로 핸드폰을 개통했다. 전화 몇 통으로 핸드폰을 바꾸다니, 세상 참 편하다. 내가 편한 만큼 월급 통장에서 할부금도 쉽게 빠져나가겠지.


특별한 일은 별다를 일 없는 날 일어난다. 핸드폰 액정이 깨지듯 특별히 안 좋은 일처럼, 특별히 좋은 일도 별다를 일 없는 날 예상치도 못한 시간에 닥치겠지. 그 특별히 좋은 일을 놀랍게 맞기 위해 하루하루가 이렇게 무료한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