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더럽혀질까 불편한, 한강 소설 <흰>

2016. 5. 26.

매일 밤 소설을 읽으며 스르륵 잠드는 걸 좋아합니다. 현실과 다른 허구의 이야기 속에 나를 몰아넣고 다음 날 눈을 뜨면, 다시 현실을 마주할 힘을 얻게 됩니다. 그게 좋아서 하나의 소설을 다 읽어갈 때면, 뒤이어 읽을 다른 소설을 찾아 두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한강 <흰>


어젯밤부터 한강의 소설 <흰>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65편의 단편적인 이야기로 엮이고 다시, 나, 그녀, 모든 흰의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서사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마지막 페이지 작가 서명


서사 대신,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건 단어입니다. 바둑판 위에 한 수를 두듯, 단어 하나하나가 문장 속에 신중하게 놓였습니다. 그 단어들이 모여 환기하는 어떤 흰 이미지들은 제 마음을 맑게 하는데, 읽는 내내 다시 더럽혀질까 불편합니다.


흰 이미지들은 흰 실로 느슨하게 엮여 가볍게 부는 바람에도 떨어져 날아갈 것처럼 불안합니다. 갓 태어난 생명을 옆에 둔 듯(실제 소설의 내용이기도 한) 계속 돌보고 싶은 소설입니다. 차분하게 읽고 잠들기에는 불편해서 숙면용 소설을 따로 갖춰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