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여행 : 어떤 책임감

2012. 8. 30.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선택하는 하나 하나에는 무언가 <책임>같은 것이 따른다. 세상 물정 모를 때에 TV에서 방영했던 성공한 디자이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미술공부를 시작했던 그 선택에는 앞으로 나의 삶을 버텨내야 한다는 큰 책임이 따랐다.

나 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책임을 거뜬히 짊어질 수 있는 강한 힘이 있는 것 같다. 별 어려움과 고민 없이 선택한 것에 대해 덤덤히 책임을 지는 모습은, 저질러 놓은 일들을 이리 저리 재며 간간히 수습하기에 바쁜 나에게는 감동적이기 까지 하다. 앞으로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나에겐 나름 막중한 선택을 위해 혼자 여행을 떠나 왔다. 그것은 마치 독감을 앞두고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랄까, 중요한 선택 뒤에 따르는 큰 책임감을 미리 겪어보고 내성을 기르기 위한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기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홀로여행은 나에겐 조금 벅차다. 여행지를 지역별로 묶어서 정해진 시간안에 가장 효율적으로 여행하는 계획을 잘 세우지도 못하고, 정해진 예산에서 하루에 얼마 만큼 씩 배분해, 무엇을 보고-먹을지를 체계적으로 계산하지 못한다. 여행지에 도착하기에 급급하다가 막상 도착하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 몰라 벤치에 앉아 여행책을 다시 꼼꼼히 읽어야 한다. 어디로 갈지 정했더라도 그 주변을 두바퀴 정도는 헤메야 그제서야 찾는다. 그렇다고 낯선이에게 살갑게 묻지도 못한다.

처음엔 꽤나 낭만적인 삶의 태도라고 스스로 위로하던 나는, 큰 책임을 앞두고, 이번 여행을 통해 조금 어른스러워 지기로 했다. 나도 남들처럼 중요한 선택도 아무렇지 않게 책임질 수 있도록, 마치 어미새가 자식새끼를 낭떠러지로 떨어뜨리 듯이, 나를 세상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내던져 보았다.


2012년 8월 20일
여름방학 홍콩여행 첫날
인천공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