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토 가나에 소설 <백설 공주 살인 사건> / 탈진실, 악감정이 드리운 서늘한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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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추구하는 게 법정이 아니다,
변호사 입장에선 이해를 조정하는 곳이지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법정 스릴러 <세 번째 살인>을 만드는 계기가 된 법률 자문 변호사의 말. 어쩐지 섬뜩한 말이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다.


사실관계를 밝히기는 쉽다.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사실은 명확한 물증이 있으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만 가지고 진실은 성립하지 않는다. ‘왜’ 라는 의문을 풀어가며 사실관계의 논리를 갖추어야 비로소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미나토 가나에 <백설 공주 살인 사건>


미나토 가나에 소설 <백설 공주 살인 사건> 이미 오래전 일본에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국내에는 막 출간되었고, 같은 작가의 <리버스>와 <유토피아>를 재밌게 읽은 기억에, 기쁜 마음으로 <백설 공주 살인 사건>을 집어 들었다.


<백설 공주 살인 사건>은 현대 사회가 뉴스를 소비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꼬집는다. 미모의 화장품회사 직원이 흉기에 찔리고 불태워진 사건. 독자인 나는 책 속에서 동료, 동창생, 마을주민의 이어지는 증언을 토대로 사건을 취재하는 주간지 기자가 된다.


피해자의 지인들이 지목한 용의자, 여러모로 의심 가는 구석은 있지만 사실로 확인된 바는 전혀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선 마치 지목된 용의자가 살인을 저지른 것이 진실인 양, 그의 신상을 털고 마녀사냥을 시작한다. 독자인 나 역시 마녀사냥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 부분에선 불편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소설은 지인을 인터뷰하는 현장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실린 여론과 취재 기사가 담긴 관련 자료가 시간순으로 구성되어, 현실감 짙고 긴장감 넘쳐,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오히려 작가의 근간인 ‘유토피아’보다 더 재밌게 읽었다.


미나토 가나에 <백설 공주 살인 사건>


자신의 기억으로 구성된 과거와,
타인의 기억으로 구성된 과거,
진실은 무엇인가


종종 동창들을 만나서 내가 기억하던 학생 때 모습과 친구들이 기억하는 모습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놀랄 때가 있다. 내가 믿는 내 모습이 진짜일까, 타인이 믿는 내 모습이 진짜일까. 그리고 그 믿음은 시간이 지나 다르게 해석되거나, 왜곡될 수 있을까.


책 후반부, 용의자로 지목된 당사자의 독백을 읽고 있으면 간담이 서늘하다. 자신이 믿었던 본인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지인들의 증언들. 그는 이미 사형당한 기분이다. 객관적 사실관계보다 믿음과 감정이 ‘진실’ 판단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 IT기술의 발달로 가짜뉴스, 탈진실이 화두로 떠오른 현대 사회의 문제일까, 아니면 시기, 질투, 혐오의 악감정이 만들어 낸 개인의 문제일까.


오늘도 책을 읽으며
악(惡)으로 기운 마음의 축을
가운데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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