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 가나코 소설, 우주를 뿌리는 소녀 / 결국 바닥에 떨어질 것을 알지만,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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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 가나코의 신작 <우주를 뿌리는 소녀>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나. 책이 나오기도 전에 예약 주문을 하고서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다. 책이 도착한 날 밤부터는 완전히 이야기에 푹 빠져 지냈다.

책을 읽는 며칠 동안 나무에 단풍이 예쁘게 들고 조금씩 졌다. 출퇴근 길, 점심시간 할 것 없이 아름다운 단풍을 보면 걸음을 잠시 멈춰 사진을 찍는 그런 날들이었다.


니시 가나코 소설 <우주를 뿌리는 소녀>


우주를 뿌리는 소녀. 작은 온천 마을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녀, 고즈에가 찾아 온다. 고즈에는 뿌리는 것을 좋아했다. 흙이고 물이고 알갱이 진 것이 무엇이든 뿌려댔다. 어느 날 자신이 ‘영원’으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온 우주인이라고 고백한다. 주인공 사토시는 고즈에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고민한다.

책의 막바지를 읽을 때쯤 같은 작가의 대표작인 <사라바>에서 ”네가 믿을 것을 찾아.” 라고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니시 가나코는 <사라바>의 후기작인 이 책에서 ‘믿음을 넘어선 앎’을 이야기했다. “그걸 믿는 게 아니라 뭐랄까,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믿음에는 의지가 담겼다. 믿음은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사회를 지탱하지만 개인의 의지에 뿌리를 두어서 영원하지 않다. 믿음이 깨지면 우리의 삶은 후퇴한다. 그래서 어쩌면, 작가가 <사라바>에서 아유무의 삶을 구원하리라던 ‘믿음’은 그러지 못했을지 모른다.

반면, ’앎’에는 의지가 아닌 공감이 담겼다. 아는 건 단지 아는 것일 뿐이다. 그 대상에 의지한다거나, 좋다, 싫다, 평가하지 않아도 된다. 앎에는 있는 그대로 공감하는 순수함과 영원이 있다. 고즈에가 그 맑고 투명한 눈으로 사토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듯이. 그러니 믿기 보다는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풍잎이 많이 떨어졌다. 이제 거리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조금씩 드러내며 겨울의 풍경을 가져 간다. 고즈에는 “모든 게 떨어져서 아름다운 거야.”라고 말했다. 단풍이 아름답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아는 것이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모든 것은 순간마다 변하고 결국 끝난다는 것을 안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마음으로 안다. 결국 떨어지는 건 알지만 기왕이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고 싶다. 고즈에가 빗속에서 뿌린 돌 알맹이처럼.


“뿌리는 게, 왜 재밌는 지, 알았어.”

고즈에는 비에 잔뜩 젖은 채 자신이 발견한 사실에 흥분하고 있었다.

“전부 떨어지기 때문이야.”

빗속에서 돌 부스러기를 연신 뿌려 대는 고즈에는 완전히 머리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말릴 수 없었다. 고즈에가 진심으로 지면에 떨어지는 돌 부스러기를 예쁘다고 생각하는 걸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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